평범한 듯 아닌듯한 회사 생활이야기
여성팀장과 여성팀원 온 첫날 자기소개를 했다.
팀장이 말했다.
'저는 인사팀에서 온 정 팀장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어서 여성 팀원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 팀장님과 같은 인사팀에서 발령받은 이 차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팀원 충원이라고 해서 나와 같은 직급이거나 후배이길 기도했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상사라니
이 회사는 사원 대리는 없는 걸까?
'정말 내가 이직을 잘못한 걸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돼었다.
정 팀장은 이 차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명씩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다.
백 부장 차례가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팀장이었는데 사람 인생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무표정의 백 부장이 일어나서 짤막하게 이야기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 팀장도 모든 일을 알고 있는 눈치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오늘 저녁 회식이니 자리를 비워두라고 한다.
첫날부터 회식이라니 의외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팀장은 미혼이라는 소리가 있었다.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싱글족을 추구하며 골드미스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 직장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었다.
정팀장을 따라온 이 차장도 30대 후반이었는데 똑같이 싱글족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같은 사람이었다.
결혼한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튼 첫날 발령을 받아 회식을 하러 가게 되었다.
모두가 분위기 좋게 회식을 하면서 마 차장이 정 팀장의 기분을 잘 맞춘다.
정 팀장도 기분이 좋으니 마 차장을 칭찬하면서 잘해보자고 한다.
근데 문제가 생긴다.
해외 출신의 박 부장이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에서
이 차장에게 술 한잔 따라보라고 한 것이다.
이 말에 이 차장이 기분이 상했는지
"박 부장님 이거 성희롱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 한마디에 화기애애했던 회식자리가 급속도로 안 좋아진다.
박 부장이 말한다.
"아니 회사 후배한테 술 한잔 따라 달라고 말도 못 하나?"
"내가 이 과장이랑 회식할 때도 술잔 비워져 있으면 따라달라고 해"
"나는 아무 의도 없이 단순히 술 따라 달라고 한 건데 그걸 성희롱이라고 하면"
"내가 억울하지!"
이 차장이 지지 않고 바로 받아친다
"박 부장님 여자 직원한테는 성희롱이 되는 거 모르세요?"
"해외 주재원으로 나갔던 분이 이런 거 하나 모르시나요?"
이 말에 박 부장이 발끈한다
"이 차장 말이 좀 심하네 해외 주재원에서는 이런 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이 차장이야 말로 좀 이상한 거 아냐?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같아"
서로 술에 취해 언성이 높아지니 정 팀장이 중재에 나선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첫 회식자리에서 이게 뭐예요!"
순간 나는 정 팀장이 이 차장 편을 들 줄 알았다.
정 팀장이 말했다.
"이 차장 회사에는 직급이라는 게 있는데 너무 말을 심하게 한 거 아냐?"
의외의 대답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니 이 차장이 정 팀장의 눈치를 채고 바로 이야기한다.
"박 부장님 제가 너무 심했네요 죄송해요"
정 팀장의 포스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나중에 반전이 있긴 했다. 알고 보니 옆팀 남자 팀장과 사내 연애 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미혼이고 싱글족에 골드미스를 꿈꾼다는 소문을 한동안 믿었다.
무튼 마무리가 잘되고
2차로 맥주집을 갔다.
맥주집을 가면서 박 부장과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도 '남자 직원이 술 따르면 성희롱이 아니고
여직원이 술 따르면 성희롱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녀 차별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성희롱이란 단어에 엮이게 되면 여자보다 남자 쪽이 더 큰 피해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회식 자리 사건 이후 여직원과의 대화, 회식에서는 항상 말을 조심하고 멀리 앉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2차 맥주집에 와서
정 팀장이 많이 취해 내 얼굴을 보면서 '이 과장 잘생겼어 왜 이리 일찍 결혼했어?'
라고 물어본다.
순간 '이거 외모평가 성희롱 아냐?'라고 생각했다.
남자 상사가 여자한테 이야기했으면 분명 성희롱이라고 했을 거다.
그러나 분위기가 '이 과장 얼굴 잘생겼죠 부럽다'라고
웃으면서 넘어가는 분위기다.
여기서 내가 정색한 얼굴로 정 팀장에게 반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웃으면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맥주에 오징어를 먹으면서 팀 내부적으로 단합을 한다.
이날 백 부장은 1차만 먹고 집에 갔다
정 팀장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머지 팀원들과 인사를 했다.
막차 전철을 타고 오는 길
성희롱은 참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러나 일명 회식 성희롱 사건은 그날 회식자리에서 마무리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