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가면,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있다고 한다. 보나 마나 부대찌개처럼 온갖 식재료 때려 넣은 잡탕의 일종일 가능성이 높다. 배고픈 시절 미군 부대 꿀꿀이 잔반으로 끓여낸 음식이 지금의 부대찌개로 진화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골치가 아픈 주문이 아무거나, 대충 알아서라는 요구다.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대충 했다가는 나중에 쌍코피 터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잘라 드려요?"
어눌한 말투와 쭈뼛거리는 몸동작에서 약간의 불안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목을 졸라버린 천 쪼가리 앞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대충 알아서 해 주세요."
"빡빡 밀지는 마시고요."
엄습한 불안감에 다급히 요구 조건을 추가했다. 가뜩이나 주변머리, 주책머리 다 빠져 허전한 머리칼인데 시원하게 밀어버리면 그야말로 갓 교도소를 탈주한 놈처럼 보일게 뻔했다.
악!
클났다.
가위를 들고 선 미용사 여성도, 믿고 머리를 맡긴 나도 얼척이 없기는 마찬가지, 영락없이 사나흘 전 절을 떠나온 파계승 머리꼴을 한 이가 거울에 비쳤다. 대물릴 수도 없는 난감함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파투가 난 판에 언성을 높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말도 잘 안 통하는 미용사를 두 번 죽이는 것 같아 속앓이만 했다.
눈치를 챈 업주가 연신 머리를 주억거렸다.
미안하면, 이발비라도 좀 깍아주던지, 망할!
대충의 이면에는 '빨리빨리'가 또아리를 틀고있다.
내 눈에 거슬린다 싶음에도 불구하고 어물쩍 대충 넘어가면 반드시 클레임이 걸린다. 오랜 현장 경험에서 몸으로 뼈저리게 깨달은 바다. 설령 의뢰인 제 입으로 대충을 요구하더라도, 대충을 야무지개로 해석해야 후환이 없다. 응가 누기 전후의 변덕은 그 누구도 장담을 못한다.
대충 알아서가 부른 잘려나간 머리카락. 선택과 결정을 타인에게 넘긴 대가를 치른 것이다.
수원수구...
뉘를 한하며 누구를 탓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