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천 년의 사랑이 아닌 천 년의 우정

by 홍고롱

나에게는 대학교 친구 한 명이 있다.


참, 말이 많더라.

“중·고등학교 친구가 진짜 친구다.”
“대학교 가면 행동 조심하고, 감정은 숨겨야 한다.”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스무 살, 갓 대학생이 되어 입학식 날 만난 그녀는
유독 나를 신경 써주는, 배려심 깊은 친구였다.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그 말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개념도 잘 모를 때였고,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어디 데여 본 적 없는 티를 팍팍 내던,
그냥 순진한 시골 소녀였다.


근데 그런 내가 뭐가 좋았는지,

나한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휘청일 때마다 일침을 날려주던 언니 같은 존재.


1~2살씩 더 먹어가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게 되고,
서로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일상이 되어갔다.


내가 프랑스로 떠나던 날.
노량진에 있던 그녀가
출국하는 나 보겠다고 인천공항까지 달려왔다.


우리는 하루를 그렇게 같이 보내고,
출국장 앞에서…
겁에 질린 나는 결국,
그녀 앞에서 눈물 펑펑 쏟았다.

(이쯤 되면 거의 연인 바이브인데..)


1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20대 중반이 되어 있었고,

각자 진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갈 타이밍이었다.


너는 이미 서울에서 검찰공무원 준비 중,

나도 아나운서 한 번 해보겠다고 서울로.


그렇게 서울에서, 우리 둘은 본격적으로 굴렀다.
인생이 이렇게 맵고 짜고 쓴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참 다행이었던 건

같이 맞고, 같이 버텨냈다는 거.

서울살이가 팍팍했던 만큼
서로 의지할 곳도 필요했다.


나는 진짜 힘들 땐 꼭 그녀에게 SOS를 쳤고,

그녀는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스타일이었기에
나는 늘 말했다.
“니 뒤에는 내가 있어. 그러니까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연락해. 기다릴게.”




무작정 시작한 독립.
세제 살 돈도 없던 어느 날엔,
다이소 가서 필요한 거 다 고르라며
밀면 한 그릇 사주고 쿨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시간은 흘렀고

각자 다른 일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한 달에 세 번은 꼭 만나

사노비로서의 삶을 같이 불태웠다.


“인생 왜 이렇게 살기 팍팍하냔 말이야…”
부어라, 마셔라.
흑역사는 거의 다 그녀와 함께 썼고,
지금은 그게 다 에피소드가 되어버렸다.




근데 솔직히...
우린 진짜 안 맞는다.

음악 취향, 성격, 사고방식, 문제 해결 방식까지.
근데도 신기하게,
나는 그녀가 땅굴 속에 들어갈 때마다 꺼내는 사람이고,
그녀는 그걸 천천히 받아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취향이 나와 얼마나 잘 맞는지를
뒤늦게 알게 될 때마다.

(그녀가 나한테 ‘컨택트’라는 영화를
제발,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두 번 졸고

세 번째에 겨우 끝까지 보고,


“이게 뭐야? 외계인? 큰 돌?”
이랬다가 그녀 멘붕 오고…


정확히 9년 뒤,
혼자 다시 보고, 감동받아 인생 영화 등극.)


가끔 너무 안 맞아서 서로 화내기도 한다.
근데 나는 금방 사과하고,
그녀는 “아 내가 예민했구나” 하며 쿨하게 넘긴다.


우린 성향이 너무 강한 둘이긴 하지만,

그녀가 예전에 했던 한마디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


“너는 혼자니까.
가족 중 누가 잘못되면
혼자 장례 치러야 하잖아.
그래서 나도 마음으로 늘 준비하고 있어.”

이게 16년 차 우정인가봉가.


또 다른 부분이 안 맞더라도

음식 취향이 기가 막히게 맞는다.

싸워도 물 베기.
밥 먹고 마시면 또 풀리는 매직.

(친구야, 남자로 태어나지 그랬니..)




우리는 그 뒤로도 쭉 만났다.

중국, 일본, 국내 여기저기를 같이 다녔고,
이번에도 그 여행기 이어가자며,



마침 같은 시기에 실업급여도 받게 된 우리.
“같이 백수의 삶 좀 즐겨보자!”며
호기롭게 여행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의 암 소식.


티는 안 냈지만,
정말 하늘도 무심하다 싶었다.


급하게 병원 같이 알아보고,
흔들리는 널 꼭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자고.


같이 버티고, 같이 이겨내자고.


다행히도 둘 다 백수여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매주 두 번 산 타고, 건강한 밥 먹는 거.


수술 전까지는 체력 키우고,
수술 후에는 시장 가서
오리 바비큐 사서
둘이서 퍼묵퍼묵.


방콕 가기 전,
좋은 소식 듣고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그리고 현재.

염증성 장염으로 입원한 나.
그런 나를 병문안 온 너를 보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요즘 롯데 자이언츠에 푹 빠지신 자매님 덕에
제가 ‘조류동맹’이란 단어도 새로 배웁니다.

암 환자가 장염 환자 병문안 오는 세상,
이거 진짜 실화냐며?


내가 더 잘할게.

우리 오래오래,
진짜 오래오래 같이 수다 떨며 살자.


그러니까,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이건 부탁이 아니라,

진심으로, 명령이다. 알겠지?


내 꿈이라구, 할머니 되어서도 철부지 하면서 내 옆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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