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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20

by kacy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은 우리나라 시사(詩史)에서 1950년대의 모더니즘 시 운동의 한가운데 있던 시인으로, ‘허무주의적 로맨티스트’로 인식되어 온 시인입니다. 그리고 ‘명동백작’이라는 칭호도 가진, 그러나 너무 짧은 생을 살다 간 시인입니다.

이 시에 대한 에피소드는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요. 전쟁이 끝나고 겨우 좀 안정을 찾아가던 1956년, 명동의 목로주점에 모인 박인환과, 당시는 기자로 후에 극작가가 된 이진섭, 그리고 가수 나애심 등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박인환이 주점에 있던 종이에 위의 시 ‘세월이 가면’을 즉석에서 써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자리에서 이진섭이 읽어 보고 곧바로 작곡을 해 나애심에게 불러 보기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몇 번 멜로디만 흥얼거리다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나중에 합석하게 된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이를 불러서 명동 그 주점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들었다는 대강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의 전체에서 느끼는 것으로는 그 사랑하던 사람과 꽤 많은 시간을 같이하면서 숱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아니 눈동자와 입술은 기억하면서 이름은 잊었다고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요.


어쩌면 단순한 두뇌의 기억보다 시각이나 촉각을 통한 기억이 오래가는 것은 사실인지 모릅니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 혹시 등하교 시간에 가끔 볼 수 있었던 옆 동내 학교 교복을 입은 청순한 느낌의 누군가를, 물론 한마디 말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 이름은 당연히 모르지만, 그 얼굴의 윤곽은 세월이 지나도 어슴푸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여선생님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가끔 선생님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우시던 모습과 그 갸름하던 얼굴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시각적 기억이 오래가는 것인가 봅니다.


일본의 한 소설가의 자전적 소설에서는, 긴자 뒷골목에 있는 어느 포장마차의 초밥 가게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같이 먹은 초밥에 대해 회고하면서, 깊게 사랑하던 그 여자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때의 그 초밥이 얼마나 맛이 없는 것이었던가 하는 기억만은 분명히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구절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미각도 사람의 이름 보다 더 오래갈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로 사랑하던 사이에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느냐고 하는 분이 분명 계시겠지요. 그런 분께서는 잠시 밀란 쿤데라의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정시인은 어떠한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서정시는 어떠한 진술도 즉각 진실이 되는 영역”이라고 선언합니다. 서정시인이 어제는 세상이 허무와 질곡의 날들이라고 말하더니, 오늘은 꿈과 낭만의 날이라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의 진술 안에서 그런 것이지만, 그러니 우리는 서정시를 읽으며 시적 진술의 현실 세계에서의 가능성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시를 읽다가 우리의 일반적 정서와 너무나 큰 괴리가 생기는 경우는, 그럼에도 그 시적 표현을 존중하고, 그에 다가갈 수 있는 다른 해석의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의 화자는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도 형체가 없는 것이고 세월도 그와 같지만, 왜 사랑은 사라지고 사랑과 함께한 그 옛 시간은 남아있나요. 이것 또한 사랑이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추상적 그 무엇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가로등과 호숫가의 풍경, 함께 앉았던 벤치는 그 눈동자 입술처럼 세월의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박인환의 대표시라고 할 수 있는 ‘목마와 숙녀’와 마찬가지로 이 시에서도 어떤 메시지 보다, 막연한 쓸쓸함과 슬픔 외로움 이런 것을 느끼는 것으로 이 시를 읽으면 될 것입니다.

1930년대 전후의 소월, 영랑의 서정시와 1950년대 시인인 박인환의 이 시를 비교해 보면 앞의 우리의 전통 속에서 느끼는 목가적인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도회적인 슬픔, 외로움을 이 시에서는 느끼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서 가수 박인희가 부른 이 노래가 한참 히트했지만 나애심이 1956년 최초로 레코드에 취입한 노래가 더욱 애달프게 들리는군요.

이 시를 쓴 지 일주일쯤 지나고 박인환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만 30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시와는 반대로, 세월이 가면 우수 가득한 그의 얼굴은 잊어도 이 시와 함께 그의 이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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