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어만선깃발2
가을 양재천 길 따라 걸으면
오색의 향연이 눈부십니다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 잎
길섶에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들국화
가을 하늘은 푸르고 나뭇가지 위에는
주홍빛 감이 익어 갑니다
한여름 태풍을 이겨낸 결실의 가을이
양재천 길을 걷는 사람들 마음에
사뿐히 내려앉고
'가을은 위대합니다' 이런 찬사가
흐르는 냇물처럼 차고 넘칩니다
가을은
또 어찌 감사할 일이 이리 많은지
꽁꽁 언 땅을 녹이듯
마음속에 쌓인 미움을 모두
걷어냅니다
감 위에 살짝 올라탄 참새에게도
자비를 베풉니다
가을이 내려앉은 양재천 길
튼튼한 두 다리로 걸으면서
지나온 길들이 너무 아름다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가을 양재천 길을 걸으면서
그리운 옛 친구를 생각합니다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던
어린 시절을 생각합니다
설익은 감을 가지째 꺾어 벽에 걸어놓고
감이 익기를 기다리던 코흘리개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사람들은 이제 곧 겨울 채비를 하겠지요
가을 나무들도 이제 잎을 떨구고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릴 테고
사람들은 그리운 것들을 더욱 깊이
품에 숨길 테지요
저기 빌딩 숲 속 양재천 가을 길은
오늘처럼
감사가 넘치고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