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낯선 일들이 산더미같이 나에게 던져지고 있었다.
당장 팀장 이상 리더들의 리더십 수준에 맞춰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경력사원이니까 금방 적응한 것이라며 들어온지 3일만에 곧바로 일이 주어진 것이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는데 당장 어려운 일이 주어지니 눈 앞이 캄캄했다. 전임자도 없었고 어디에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어리버리하다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심한 질책 속에 직장생활 첫 단추를 잘못 꿰고 말았다. 이후 직장생활은 매우 험난했다.
새로 입사한 직원이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들어온지 한 달이 안되었는데 벌써 회사 기본 시스템, 조직, 자기가 할 일을 다 이해하고 본격적으로 자기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여전히 회사 조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깜깜이고 자기 일도 잘 이해하지 못해 매번 쩔쩔맨다.
이 둘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우선순위에 따라 그 업무들이 정리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아까 예를 들었던 팀장 리더십 교육을 예로 든다면
- 팀장들의 개인 별 리더십 특성 분석
- 각 팀 별 조직문화 특성
- 회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리더십 소개
이런 부분이 하나씩 정리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쪽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뭐부터 해야 하는지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만일 내가 해야하는 업무에 대해 모르겠으면 팀장을 붙잡고 물어봐야한다. 절대로 혼자서 끙끙 앓으면 안된다. 그것도 몰라? 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물어봐야 한다. 한번 핀잔 듣고 일 파악하는게 끙끙 앓다가 일 파악 못해서 고생하는 것보다 백 배는 낫다.
업무에 대한 기본 지식, 경험이 있을 때 당연히 낯선 업무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스쿼시를 처음 시작한다면 오랫동안 테니스를 친 사람이 더 빨리 배울까? 평생 운동이라고는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아본게 전부인 사람이 더 빨리 배울까? 이건 물어보나 마나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빨리 적응하게 된다. 그래서 전투 경험 있는 병사들이 가장 최정예 군대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미안한 소리 하는 것을 유난히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폐를 끼치기 싫어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질문하는 방법을 잘 모르다 보니 여러번 타인의 불평을 들은 적이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트라우마가 되다 보니 질문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바보같은 사람,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사람들은 빨리 캐치하는 사람이 있고, 이해가 다소 느리지만 한번 제대로 이해하면 응용력이 좋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야속하다. 절대 오랜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나 한국 직장문화는 더하다. 신입사원은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지만 경력사원에게는 그런거 없다. 바로 일 시키기 위해서 급여 높은 경력사원을 뽑았다고 생각하기에 알짤 없는 것이다.
예전에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일 때 했던 이야기가 있다.
"선수 키워서 쓸 생각 하지 말고 있는 선수를 잘 조합해서
당장 좋은 성적 낼 생각을 해라.
선수 키우는거 기다려 줄 축구팀은 그 어디에도 없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절대 내가 차근차근 배워서 성과내는거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도 그래서 참 많이 고생했다.
앞에서 소개했던 "왜 일을 빠르게 파악하지 못하는지를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 방법을 간단히 다시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다.
일단 회사 돌아가는 소식을 빨리 알아야 한다. 각 부서에는 인맥이 넓고 부서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는 핵심인재가 반드시 있다. 이 사람과 친해져라. 그러면 회사 핵심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홈페이지에는 최근 외부특강 관련 내용이나 신상품 출시 소식, 타운홀미팅 등 회사 관련 소식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스팸메일처럼 쓰레기통에 마구 처박지 말고 꼼꼼하게 정독하면 큰 도움이 된다.
완벽하게 이해한 다음에 하려고 하면 잘 안된다. 윗사람들이 그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일단 잘 모르는 상태에서 먼저 해보고 부딪쳐보고 깨져보자. 그렇게 먼저 일에 익숙해져야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 그 모르는걸 전임자에게 물어봤을 때 쉽게 이해하게 된다. 내가 해본 것이기 때문이 이해가 빠른 것이다. 요즘은 챗 GPT가 있기에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나 사이트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내 친구 챗 GPT를 자주 활용하자.
내가 잘하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창의성은 참 좋은데 꼼꼼함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숫자를 다루는 재무회계팀 업무는 잘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꼼꼼함은 좋지만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교육팀처럼 교육 컨텐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이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숫자 다루는 걸 잘 못하는데 위에서 예산 관리를 시킨다면 솔직하게 내가 이 쪽 업무는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자. 자존심 때문에, 차마 거절하기 힘들어서 그 일을 덥썩 맡아버리고 폭탄이 터져버리면 난감해진다. 자신없는 일은 처음부터 맡으면 안된다.
모르는 것은 직접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질문을 통해 반드시 해결하고 가자. 단 앞에서도 말했듯이 A부터 Z까지 모르는 것을 다 물어보는게 아니다. 먼저 내가 해보고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것을 한 번에 정리해서 물어봐야 한다. 하나 물어보고 조금 있다가 또 물어보고 이러면 질문 받는 사람이 괴로워진다. 먼저 물어보고 싶은 내용을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고 하나씩 해결하자. 이메일로 받으면 기록으로 남기에 두고두고 내가 활용하기에 좋다.
나는 '슬로우 스타터' 였다.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처음부터 한국 야구에 잘 적응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시즌이 시작하고 두 달이 넘었는데도 성적이 신통찮으면 그 선수는 다른 외국인 선수로 교체된다.
직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슬로우 스타터였던 나는 늘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고 좋은 첫인상을 주지 못했다. 이는 여지없이 험난한 직장생활로 이어지게 되었다.
좋은 첫인상을 주자. 그 방법은 인사 잘하고 붙임성 있는 모습도 있겠지만 결국은 빨리 일을 파악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걸 통해 다른 동료들의 일을 덜어주는 것이다. 직장은 결국 일하기 위해서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