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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머문 너와 나

그 시간에, 그 자리에

by Soo 수진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많이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언제나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래, 그러자. 오랫동안 좋은 사이로 지내자.

너와 나, 따스하게." 너의 그 말은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따뜻한 말이었다.
휴...
그럴 때마다 안심이 됐었다.



그냥, 말을 걸고 싶을 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마음 쓰이는 일이 있을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울적할 때.

여행을 다녀온 후, 아직 여운이 가시기 전 설렘을 나누고 싶을 때.
맛있는 커피집을 찾았을 때,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마주했을 때도—

언제든 마음을 열어두고 나를 기다려주던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원했었다.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뭐든 내 마음대로 해버린 순간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걸 당연하게 여겼다.

너의 기다림도, 말없이 건네던 위로도, 언제든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 마음도.


지금,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내 말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
아무리 큰소리로 불러도, 너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남은 건 내 부름의 울림만 가득하고, 그곳에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너를 부르고 있다.

안갯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진 너. 그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눈앞을 가린 안개처럼,
너는 어느새 내가 볼 수 없는 거리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한없이 다정하고, 따스했던 너는 이제, 내 곁에 없는 거 같다

그 시간이 꽤 흘렀다.
마음은 여전히 울었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깨어 있는 새벽이 싫었다.

그런 시간이 계속될수록, 나의 몸과 마음은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같았다. 제자리를 잃은 조각들.

어디에 끼워 넣어도 맞지 않는 마음의 조각난 퍼즐.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 요즘 캐나다 날씨가 얼마나 청명하고 맑은지, 바람은 또 얼마나 상쾌한지.

- 내가 요즘 어떤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지도.

-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그 무서움을 이겨내려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도.

- 며칠 전엔 피검사를 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단 괜찮았다는 말도.

- 어제는 자전거를 타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는데, 손바닥에 작은 상처가 났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까지도—

너라면, 그 모든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어줬을 것 같아서.


“컨디션은 어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무슨 일 있어?”
늘 그렇게 물어주던 너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머물지 않는 듯하다.

어디로 간 걸까.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돌아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너에게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이런 내가 너의 삶에 방해가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기다리고 있어’라고도 말하지 않을 거다.

너 없는 이 자리, 텅 빈 마음 한가운데 이젠 나 혼자서 단단함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요즘, 친구가 보내준 몇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너도, 조용히 무언가를 읽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시간을 고요히, 차분하게 보내야 할 것 같다.

너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그저 그 자리에서 언제나 맑고 따뜻하길.

언젠가는 내 말을 다 전할 수 있기를.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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