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_The Ghost in My Mind #11
그날도 나는 아이스커피를 두 개 사서 학원에 출근을 했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나는 X가 퇴근 때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었기 때문에 X의 커피도 어느새 함께 사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학원의 좁은 원장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고 있는데, X가 툴툴거리며 들어왔다. 뭔가 일에 차질이 생긴 것인지 얼굴 표정에 짜증이 살짝 서려 있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쏟아낸 말을 대충 정리하면, 담당자가 행사 계획안에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수정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말을 늘어놓으며 행사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모르는 진행 계획들이었다.
나는 행사에서 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벤트 내용을 수정해야 된다는 것이었고,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나보고 좋은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오자마자 짜증이 서린 표정과 목소리로 쏟아낸 말들을 듣다 보니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하지만 그 마음을 누르고 그래도 도움이 되려는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벤트에 사용할 만한 도구들을 찾아서 보여주며 어떤지 X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X는 썩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찾아서 또 보여주었지만 반응은 여전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X의 표정에서 내가 무언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 이벤트를 너는 어떻게 하려는 거였는데?”
나도 이제는 짜증이 났다. 담당자에게 거절당한 분풀이를 나에게 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급조한 아이디어라 마음에 들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X의 태도는 내게 무례했다.
“그럼 거기에 강사들 불러다 놓고 이 사람들 안 써먹을 거야?”
X는 이제야 자신의 의도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얼굴은 여기까지 생각 못하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면 진작 그걸 말해줘야지. 그럼 이벤트도 강사들 수업 관련해서 하겠다는 거잖아”
나는 화가 나서 X를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그럼 당연한 거 아니야. 앞 뒤에 뷰티나 과학 관련 강의가 있는데 이벤트도 그거에 맞춰가야지.”
“내가 앞뒤에 무슨 강의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너는 그 생각만 하니까, 그리고 오면서 담당자한테 전화까지 받았으니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만, 나는 여기 학원에 온 거라고. 애들 가르치러 학원에 왔지 내가 여기 오면서 계속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하면서 오진 않는다고.”
나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말해버리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는 화를 삼키며 노트북 모니터를 쏘아보면서 분을 삭이고 있었다. 나와 마주 앉아있던 X는 잠시 조용히 있더니 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언니, 아이디어가 안 받아들여지니까 화났구나?”
그 말에 나는 X를 정면에서 노려봤다. 어이없는 말이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X는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을 나로 돌리고 있었다. 나를 아이디어 하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심통 부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너무 황당하고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었고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 그 말은 네가 하고 싶은 말 아니야? 네가 담당자에게 까여서 화난 거잖아.’
이 말이 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회오리쳤지만, 이것을 내뱉으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올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폭풍이 휘몰아치면, 곧 있을 학원 수업에 지장을 미칠 것이고, 수업 후에 폭풍이 쓰러뜨리고 간 잔해를 처리해야만 했다. 머릿속이 갈라졌다. ‘여기서 끝을 보자’, ‘아니, 참고 일단 넘어가자’. 내 마음은 미친 듯이 갈등했다. X는 내 탓으로 이 상황을 돌렸고, 그것은 일종의 공격이었다. X가 이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날린 회심의 한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난 내 선택의 결과를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이 등원하자 수업을 핑계로 나는 자리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