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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등불 같은 사랑

말없는 손끝으로 키운 사랑, 문을 "똑똑" 두드리던 엄마

by 감차즈맘 서이윤

어릴 적 나는 사랑을 '말'로 배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알게 되었다.

진짜 사랑은 말이 아니라 '손끝'에 있었다.


말없이 나를 키워낸 엄마의 손,

밤마다 문을 똑똑 뚜드리던 그 손 끝에서

나는 '사랑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임을 배웠다


아빠가 내게 남겨주신 건 균형의 지혜였다면,

엄마가 내게 가르쳐주신 건 묵묵한 사랑의 무게였다.


아빠의 사랑이 봄 햇살처럼 따뜻했다면,

엄마의 사랑은 늘 곁을 지키던 등불 같았다.


사랑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된다.

책임처럼 보였던 모든 순간이,

사실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아빠에게서 세상을 믿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버티고 견디는 힘을 배웠다.

책임과 사랑이 같은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해내던 말없는 엄마에게서 알게 되었다.


그 무게를, 나는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결국, 나를 키운 두 사람의 온기와 무게 덕분이었다.


끊임없이 바쁘던 엄마의 손끝은

사실,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


새벽 다섯 시, 아직 해도 뜨기 전

부엌 불빛 아래서 도시락 아홉 개를 싸던 엄마.

입 까다로운 내가 도시락을 남겨 오면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아이고야,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야겠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하며

장 바구니를 들고 나서던 사람은, 언제나 엄마였다.


그 엄마의 한숨이 사랑이었다는 걸

나는 왜 그때 몰랐을까.


"너 정말 키우기 힘들어 죽겠다.."

투정처럼 중얼거리던 바로 그 엄마.


그 말을 듣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딸에게

엄마는 조용히 다가와 노크를 했다.


"똑똑, 미안해.

엄마가 힘들어서 그랬어.

다시 차렸으니까, 어서 와서 먹어."


지쳐, 힘이 빠진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사람이었다.


혹시 마음 상했을까 염려돼,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달걀을 저어 만든

따끈따끈한 카스텔라를 구워

제일 먼저 우유 한잔과 함께 쟁반에 올려놓고는-


"똑똑"


말없이 노크만 하고

조용히 문 앞에 두고 돌아서던 사람.


비 오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나간 딸이 걱정돼

교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사람 역시, 엄마였다.


엄마는 말 대신 행동으로 말했고,

기다림으로 사랑했다.


그 무게를, 그땐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매일 조금씩 지쳐갔다.

웃고 싶어도 웃을 힘이 없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건

뜨개질하며 등을 보이던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의 손끝의 바쁨이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떠 받치는 버팀목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걸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고, 너무 철이 없었다.


엄마는 말 대신 손으로 살고 계셨던 것이다.


뜨개질은 단지 엄마의 취미가 아니었다.

그건 우리 집의 생활비였고,

내 학원비였고,

겨울 코트 한 벌이었다.


등 돌리고 앉아 계셨던 엄마의 뒷모습이

이제는 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나도 엄마처럼 살고 있다..

엄마처럼 강하고, 조용히, 깊이 사랑하면서.


엄마의 사랑은, 조용한 등불 같은 것이었다.


아빠가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셨다면, "

엄마는 자신의 삶 전체를 우리를 위해 살아내셨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존재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야

엄마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그 모든 나날들이 얼마나 버겁고, 고된 책임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깊은 사랑이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사랑은- 때로는 고된 책임과 함께 오는 것이었고,

말없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말없는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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