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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의 붉은 컵

1부:빨간 빛에 스며든 달의 세계 (1)

by 윤주MAYOOZE
#1 [출근 길의 붉은 컵]


하빈은 매일 아침, 정신없이 출근했다.

부모를 잃은 뒤, 그는 떠밀리듯 버티는 법만 알았다.

그저 틀에 박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작은 원룸과 반복되는 회사 생활이 그의 전부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그의 하루는 세상과 조금씩 멀어져 가는 듯,

고요하지만 쓸쓸한 리듬 속에서 흘러갔다.




무거운 공허가 하빈을 감싸 안듯 내려앉았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짓누르며,

그의 존재 자체를 천천히,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는 커피 한 잔으로 겨우 마음을 붙들고

지하철과 버스를 무심히 오가며 하루를 버텼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하빈은 자신이 조금씩, 서서히 존재를 잃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오늘도 출근길이었다.

늘 지나치던 카페 앞에서,

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하빈만 홀로 멈춘 듯,

공기마저 조금 느려진 기분이었다.


창가 자리,

빨간 머그컵을 손에 쥔 여인이 앉아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녀는 말없이 커피를 음미하며

세상의 분주함과는 다른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손에 든 빨간 컵이

하빈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았다.

커피 색이 아니라,

컵의 붉은 빛이

마음을 이상하게 울렸다.

잠시, 세상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빈은 한 걸음 뒤에서 숨을 죽였다.

손에 닿은 컵의 붉은 빛이

가슴 한켠을 조용히 흔들었다.


붉음이, 이상하게도

마치 오래된 상처를 살짝 건드리는 듯했다.

‘왜 저런 색일까…’

그 질문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말없이, 하빈은 그 붉은 빛 속에서

자신의 공허를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잠시 눈길을 주는 순간,

오래 기다려온 무언가를 만난 듯

하빈의 심장이 묘하게 울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동시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그 눈동자 속에 갇혀있었다.



하빈의 손이,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 옆 테이블 위의 빨간 컵을 향했다.

손끝에 닿기 전부터

잔잔한 떨림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컵을 감싸 쥐자,

커피의 따스한 진동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것이 정말 무심코 집은 것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듯한

본능이 이끄는 것인지,

하빈 자신도 끝내 알 수 없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따스함에

심장이 조여왔다.

그리고 컵 속에서,

어딘가 흐릿하게 남아 있던 기억이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지며,

카페의 풍경은 천천히 어린 시절로 스며들었다.

작은 손에 빨간 컵을 쥐고 달리던 어린 자신,

햇살 속에서 반짝이며 웃던 엄마 린하.

그 순간, 따스함과 그리움이

가슴 속 깊은 어딘가에서 조용히 울리듯 번졌다.

하빈은 숨을 고르며,

그 기억 속에 잠시 머물렀다.


순간,

카페 앞을 스쳐 지나간 붉은 차 한 대가

모든 풍경을 가로막았다.

시간은 잠시 멈춘 듯,

하빈은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컵 속 남은 흔적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그를 과거 속으로 끌어당겼다.

햇살과 웃음,

그리고 오래전 잃어버린 온기까지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지금, 그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겪은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밝혀낼 사람.

손에 쥔 빨간 컵을 꽉 움켜쥐며,

하빈은 속으로 다짐했다.

‘무엇이든, 끝까지 알아내겠다고.’

컵의 따스함이 손끝을 스쳐

가슴 깊숙이 남아

그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하나씩, 반드시… 진실을 찾아낼 거야.”

본 작품 《빨간 커피를 마시는 여인》은 저자 채유달의 창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제·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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