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단하게 굳어 풀리지 않는 앙금처럼

제과제빵사의 사회생활 이야기

by 이예린

번아웃도 오고

자책도 해보고

오해를 받기도 하고

꾸지람도 듣고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던 루시는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내가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악한 심정을 갖고 일한 적도 없고,

누군가를 복수하기 위해 일한 적도 없다.

누구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나는 나를 믿는다.'


루시의 속 마음을 알고 믿어줄 사람은

본인 자신 밖에 없음을 알게 된 루시는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편해졌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더라도

루시는 집에서 속으로

'네가 정말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잖아?

나는 알아. 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나는 후회 안 해.'

라며 본인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그렇게 점점 자기 위로법을 알게 된 루시는

어느덧 다시 자존감이 회복되고

올바른 마인드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관리자분과 트러블이 있던 날이었다.


명확한 지시를 못 받은 루시는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대로 일을 진행하였다.


물어보고 했어야 했던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인정한다.


그렇게 믹싱기에 반죽을 넣고 돌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관리자분은 루시에게 다가왔다.


눈빛이 이미 루시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내가 아까 한 말 이해를 못 한 거니? 아님 나를 무시하는 거니?

이렇게 할지 말지 물어보는 게 그렇게 어렵니?

넌 왜 항상 니 멋대로니?

내가 우습니?" 라며

루시가 하던 생각과는 아무 연관 없는

그만의 추론을 마구 퍼붓기 시작했다.


루시는 해명하고자 그런 게 아니라며 얘기하였지만

관리자분은 그 이전에 있었던 일까지 들먹이며

루시를 계속 비난하다 그만,

돌고 있던 믹싱기를 발로 찼다.


충격이었다.


믹싱기는 공장의 정 가운데에 있었고

모든 직원들은 그 모습을 봤다.


모두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공장에는 루시와 관리자 분 뿐이었다.


그는 끝까지 화만 내다가

기어코 혼자 열을 식히려 밖을 나갔다.


루시는 후회와 억울함이 몰려왔다.


자신이 한 실수가 이렇게까지 욕을 먹을 일인지

폭력적인 행동이 나오실 만큼 자신이 답답한 건지

아니면 그냥 오늘 기분이 나쁘셨던 건지.


몇 분이 지났나,

관리자분은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와 루시에게 말했다.


"네가 직급자라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지,

저기 있는 사원들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까?"


직급자는 더 욕을 먹고 폭력적인 모습을 봐도 된다는 건지,

마치 단단하게 굳어 풀리지 않는 앙금처럼

루시는 관리자분을 점점 이해하지 못하고

더 이상 그분에게 일을 배우고, 같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렇게나 원망하기는 처음이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 방법'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여 각색한 글이기에 실존 인물과 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공지드립니다 <3


이 브런치북은 앞서 연재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굽습니다'의 글을 읽고 보시면 더욱 생생하고 재밌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8화라즈베리가 들어갔지만 스트로베리라 착각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