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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견생 살아보기

by 솔이


운동하지 않아도 날씬하고 싶고

배우지 않아도 똑똑하고 싶다.


하지만, 뭐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있겠는가.

열정 가득했던 내 인생이 20대 후반으로 가면서

뭐든 귀찮게 느껴지고 자연스레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보지 않게 되었다.

주말부부를 하게 되면서는 그렇지 않아도

나태한 평일을 보내면서 이상한 보상 심리로 주말에는 격하게 나태해졌다.


어쩌다 이번 주 주말은 삼월이와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강제로 갓생을 당해버렸다.


박삼월은 우리 집 유명한 게으름뱅이다.

최근 날씨가 더워지고는 간식으로 유혹하고

뛰어가는 척 원맨쇼를 해봐도

산책에 협조를 안 해준다.


저녁에는 이 투정을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지만

출근시간이 정해진 아침에 꼼짝도 안 하는

저 댕댕이를 보고 있으면 혈압이 오르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시험기간만 되면 왜 그렇게 뉴스가 재밌던지.

박삼월도 다리를 다쳐 요양 차원에서 떠난

대구 여행에서 산책러버가 되어버렸다...

너 진작 그렇게 산책했으면 안내탈락견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 아녀...


의외로 삼월이는 안내견을 지원한 적도 없지만

같은 견종의 총명하고 온순한 안내견과는 너무

상반되는 행동을 하고 어릴 때는 말을 듣지 않아 우리가 지어준 별명 중 하나가

'안내탈락견'이다.

안내견은 순대집을 지나쳐도 앞만 본다는데

우리 삼월이는 800m 앞에 있는 길 고양이

사료도 정확히 알아채고 망설임 없이 달려간다.


삼월이 샤워시키고 지치고 힘든 몸을 족발로

달래고자 늦은 저녁을 시켰다.

삼월이는 항상 원하는 게 있으면

세상 순진하고 귀여운 척 표정을 짓는다.


밥 먹을 때는 먹고 싶으면 옆으로 와서

코로 툭 툭 치면서 자기도 달라고 표현한다.

할아버지는 밥 먹을 때 코로 몇 번 치고

귀여운 표정 지어주면 바로 무장해제되지만

언니, 오빠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10분 정도 할 수 있는 갖가지 노력을 해보더니

이내 포기하고 바닥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또 하나 귀여운 점은 삼월이는

거울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아는 건지 마는 건지

우리한테 걸어오면서 한 번, 자다 일어나서 한 번

삼월이가 거울 볼 때마다 우리 부부는 빵 터졌고

남편은 "박삼월 공주병이가!" 라고 말했다.

창문 밖 바깥세상이 신기한지 어찌나 커튼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구경을 하는지.. 귀여웠다.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산책을 나가지 않으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책, 저녁에 산책..

본가에 있을 때는 삼월이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혼자 옥상으로 달려가서 편했는데

아파트에서는 혹여나 너무 참을까 봐

자주 데려나가야 해서 우리의

활동량이 어마어마했다.


산책 같이 가기로 해놓고 잠에 취해서

짜증을 내는 남편이랑 티격태격하면서

아기를 키우면 더 힘들 텐데 생각하며

출산과 육아에 대한 마음가짐을 제대로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삼월이는 작은 몸과는 다르게

청소기를 무서워한다.

로봇청소기는 태어나고 처음 봤을 텐데

이것마저 무서워했다.

로봇청소기가 다가오면 뒷걸음치면서

내 뒤에 숨는 귀여움을 보였다..ㅎ


무선청소기로 청소할 때는 신발장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고 언제 끝날지

동태를 살피는데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해서

미소를 짓느라 잇몸이 말라버렸다.

삼 월 이의 갓견생 살기 이틀 차,

에라 갓생은 무슨... 우리 삼월이 아침에

산책 가자는데 오빠가 안에서 자고 있으니

궁둥이 바닥에 붙이고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아침 산책 포기 하고 밥 차리고 있으니

소파에서 자는 오빠 옆에 앉아 하품을 쩍 쩍..

너... 사람이지....


아침밥 챙겨주니 급발진 차량처럼

바로 인형 집어 들고 흔들고 던지기 난리를 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놀러 가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더워서 서 있으면 땀이 뻘뻘..

삼월이가 없었다면 에어컨 찜질하고 소파에

누워있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삼월이는 혀에서 침이 흐르고 우리는 땀이 흐르고..


대형견을 키우는 꿀 팁 중 하나는

의외로 대학교가 산책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대학 캠퍼스가 대체로 예쁘기에 걷기 좋고

젊은 대학생들은 댕댕이를 반갑게 맞아 준다.

관심받는 거 좋아하는 삼월이에게

아주 안성맞춤인 곳이다.

대학교 산책에다가 언니, 오빠 정비소까지

따라갔다 오니 삼월이 거의 밤 새 부동자세로

기절했다. 남편이 삼월이 숨은 쉬는 거냐며

걱정할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저녁에 또 산책..... 이게 갓생이 아니면 뭔데..

삼월이 오줌을 너무 참아 혹여나 방광염 걸릴까

20분 정도 또 걸었다.


삼월이는 빔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빛 안내판을 굉장히 좋아한다.

간혹 저 빛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도박에 빠진 강아지 마냥 바닥에 빛을 잡겠다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무아지경이 된다.

마지막 날, 삼월이와 대형 애견카페를 갔다.

수영장이 있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물트리버답게 삼월이도 물을 사랑한다.

수영을 얼마나 우아하게 하는지 오리 같다.

수영은 관절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맘껏 놀 수 있도록 두었다.


삼월이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남편 얼굴이 묘하게 밝아지는 거 같은 건

그냥 내 착각이겠지..?


주말 동안 늦잠도 자지 못하고 자꾸 새벽에 일어나

잠을 깨우고 사고 치는 삼월이 때문에

하루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또 계속되는

강제 산책에 삼월이 케어하느라 주말근무를 한 기분이지만 괜찮다.

그렇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으니!


...라고 할 뻔!

또 월요일 아침부터 산책 거부 운동하는

박삼월 덕에 5분 지각했다.


하지만, 늘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행복을 주는 삼월이 너무 사랑한다..!

다음에는 삼월이의 대가족을 차례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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