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후 때문인지, 아니면 때 이른 장마 때문인지. 며칠째 폭우가 하늘을 찢을 듯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2035년 4월 20일 일요일, 이안의 사형 집행일 당일 아침. 국립법무병원이 위치한 공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먹구름은 마치 거대한 진실을 감추려는 듯 도시 전체를 낮게 짓누르고 있었다. 감호실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는 고막을 찢을 듯한 격렬한 드럼 소리였고, 그 굉음 속에서는 정상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병원 앞마당은 비명을 지르는 폭우 속에서도 이미 새벽부터 아수라장이었다.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인권 보호 단체에서 나온 수십 명의 시위대들이 붉고 검은 피켓을 들고 "사형제 폐지하라!", "뇌사자 사형은 살인이다!"를 외치며 격렬하게 집행 중단을 요구했다. 그들의 절규는 폭우 소리에 희미하게 묻혔지만, 젖은 옷과 격앙된 표정은 그들의 단호한 의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각종 언론사의 기자들은 거대한 카메라 렌즈를 비에 젖은 어깨 위로 받쳐 들고 병원 정문 앞에서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한 채 현장 상황을 보도하기 바빴다. 음산한 날씨와 인간의 광기가 뒤섞인 그곳은, 긴장과 흥분, 그리고 혼돈이 뒤엉킨 거대한 생지옥이었다.
이안의 사형은 그가 감호 중인 병원 내 특수 감호실에서 진행되기로 했다. 병원 본관 지하 3층에 위치한, 창문 없는 육중한 콘크리트 공간. 그곳은 외부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고 침묵만을 끈적하게 증폭시키는 요새 같았다. 정오 12시가 가까워 오자, 감호실 내부는 이미 싸늘하고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정국 고위 관계자, 의료진, 그리고 법무부에서 파견된 파란 제복의 법무관들이 저마다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특히 최민준 병원장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된 오늘의 사형 집행을 아무런 흠결 없이 진행하여 자신의 승진 발판으로 삼으려는 듯, 시종일관 침착함과 여유를 가장하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덮은 재킷은 주름 한 점 없이 완벽했고, 빛나는 구두는 마치 방금 닦은 듯 윤기가 흘렀다. 이는 '의식'과도 같았던 이번 사형 집행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려는 노골적인 야망을 감추지 못했다. 사형 집행은 명색이 거창했지만, 사실상 생명유지장치의 전원을 끄는, 섬뜩할 만큼 단순한 의식이었다.
집행을 담당할 교도관은 총 3명. '누가 진짜 전원을 껐는지 알 수 없게 하여',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관례였다. 하지만 오늘 집행을 맡은 법무부 소속 세 명의 베테랑 교도관들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뇌사자' 사형이라는 전례 없는 경험에 모두 극도의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들의 굳게 다문 입술과 창백한 얼굴에는 인간 생명의 무게, 그리고 자신들이 수행할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넥타이를 매만지거나 손끝만 만지작거리며, 자신들을 짓누르는 불안감을 감추려 애썼다. 감호실에는 억눌린 불안과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귀청을 찢는 듯, 감호실의 무거운 정적 속을 파고들었다. '똑, 딱, 똑, 딱.' 쉴 새 없이 12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특수 감호실 내에는 감히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는, 섬뜩하리만큼 무거운 침묵만이 숨통을 조이듯 내려앉아 있었다.
최민준 병원장이 뻑뻑한 목을 가다듬으며 마이크를 들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든 마이크를 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단호함을 애써 불어넣었지만, 그 가장자리에서 미약한 떨림이 새어 나와 그의 감춰진 긴장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는 굳게 닫혔던 입을 열어, 법정에서 들었던 그 차가운 언도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듯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감호실의 삭막한 공기를 찢어발기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무게를 짓눌렀다.
바로 그 시각, 병원 정문 앞.
키이이익!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붉은 스포츠카 한 대가 물보라를 폭발시키며 빗물 고인 아스팔트 위에서 미끄러지듯 급정거했다. 인권 단체 시위대와 기자들은 예상치 못한 물벼락을 맞으며, 그 일순간 정지된 듯한 침묵 속에서 차에 탄 사람이 누구인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차 문이 벌컥 열리고 류세린이 튀어나왔다. 폭우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긴 붉은 머리카락, 물웅덩이에 킬힐이 처박히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그녀는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곧장 건물 안으로 돌진했다. 비바람 속을 꿰뚫는 붉은 실루엣은 마치 번개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발걸음은 지옥이라도 뚫고 온 듯 거침없는 광기마저 느껴졌다. 폭우와 시위대의 아우성으로 어수선하던 병원 앞마당은 그녀의 등장과 함께,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 일순간 깊은 고요에 잠겼다.
최민준 병원장의 판결문 낭독이 끝나고, 시계가 정확히 12시를 가리킬 무렵. 집행 교도관들의 손이 이안의 생명유지장치 스위치를 향해 뻗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망설임과 함께 굳은 결의가 교차했다. 침대 위 이안의 창백한 얼굴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천장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콰앙! 육중한 감호실 문이 폭발하듯 벌컥 열리며, 류세린이 폭풍처럼 밀고 들어왔다. 그녀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이 차가운 바닥을 적셨고, 폭우에 젖은 붉은 머리카락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감호실을 짓누르던 싸늘한 침묵은 산산조각 났다.
"멈춰요! 당장 집행을 중단하라고요!"
류세린의 목소리는 폭우 소리를 뚫고 나올 만큼 날카롭고 강압적이었다. 차갑게 빛나는 그녀의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옳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담겨 있었고, 상대를 압도하는 노골적인 기개가 번득였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끝으로 태블릿을 치켜들었다.
"당신들은 지금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려 하고 있어! 이대로 강행한다면, 당신들은 모두 무고한 사람을 죽이게 될 수도 있다고! 내 말 알아들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히스테리컬 하게 높아졌지만, 그 안에는 논리를 벗어난 감정적인 비난이 아닌, 예리한 경고와 지적인 우위가 명확하게 실려 있었다.
감호실 내 모든 인원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보다 더 날 선 외침에 경악했다. 곧 그녀가 죽은 류현수 소장의 딸임을 알아챘고, 누구보다 이 사형 집행을 간절히 원할 것이라 여겨졌던 그녀의 뜻밖의 행동에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과 혼란, 그리고 불신이 떠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라는 당혹감과 함께 웅성거림이 삽시간에 감호실을 채웠다.
최민준 병원장은 당혹감과 함께 치솟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그녀를 제지했다.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류 박사님. 아무리 고인의 따님이라고 해도, 이렇게 무책임한 발언으로 법의 집행을 방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디 감히 이런 중대한 의식을 방해하느냐'는 노골적인 짜증과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
류세린은 싸늘하게 그를 응시했다.
"무책임? 진실도 알지 못한 채 눈앞의 종이쪼가리만 믿고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려는 당신들이 더 무책임해! 당신들이 붙잡고 있는 건 진실이 아니야!"
그녀는 최민준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스위치를 막아서려 했다. 마치 눈앞의 존재들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로막는 무의미한 장애물인 듯했다.
교정 책임자가 마른기침을 하며 엄하게 말했다.
"우리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사형수 이안의 사형 집행을 진행 중입니다. 사형 집행에 일반인은 참관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교도관! 당장 이 여자를 끌어내지 않고 뭘 하고 있나?!"
류세린은 교도관들이 다가와 양팔을 붙잡으려 하자, 마치 성가신 벌레를 쫓듯 냉정하게 손을 쳐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진실이 모두 밝혀질 때까지 이 집행은 중단시켜야 해!" 그녀는 힘으로 저항하는 대신, 날카로운 독설과 멸시가 가득한 눈빛으로 교도관들을 압도하려 했다.
그러나 훈련된 교도관들은 그녀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을 뿐, 곧장 그녀의 팔을 붙잡아 거칠게 끌고 나갔다. 류세린의 맹렬한 외침은 육중한 감호실 문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닫히며, 무거운 침묵에 강압적으로 묻혔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격렬한 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감호실에는 그녀의 외침의 잔향과 몸부림의 흔적이 공기 중에 채 가시지 않은 채 맴돌았고, 모두의 어리둥절한 웅성거림은 어색한 기운을 더했다.
'진실' 그녀가 내뱉었던 말은 몇몇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누구도 감히 그 의미를 캐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최민준 병원장은 격앙된 표정을 애써 가다듬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교정 책임자에게 고정되었다. 교정 책임자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 어서 집행하지. 시간이 조금 지체됐구먼."
최 병원장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혼란을 지배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의 굳은 고갯짓에 세 교도관의 손이 다시 이안의 생명유지장치 스위치를 향해 뻗어졌다. 그들은 억눌렸던 긴장을 뱉어내듯 동시에 스위치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바로 그때, 콰아아아 앙!
귀청을 찢는 듯한 엄청난 천둥소리가 감호실 전체를 강타했다. 전등이 '지직'하고 몇 번 깜빡이더니 순간 암전되었고, 이내 비상등의 희미한 주황빛이 감호실을 공포스럽게 채웠다. 번개가 친 외부 전력선에 과부하가 걸린 듯, 감호실 내부의 전기는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조명은 불안하게 깜빡이는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가며 모든 것을 불연속적인 이미지들로 조각냈다. 마치 필름이 끊긴 오래된 영사기 속 장면처럼, 현실감이 사라진 기괴한 풍경이었다.
천둥과 번개 소리에 놀란 사형 집행 교도관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스위치를 향해 뻗었던 한 교도관의 손가락에 경련처럼 힘이 들어갔다. 덜컥! 소리와 함께 생명유지장치의 주전원 스위치가 꺼졌다. '삑삑삑!' 경고음이 울리고, 이안의 바이탈 사인 모니터에는 파형이 사라진 평평한 직선만이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이안은 이제 뇌 기능뿐만 아니라 심장마저 영원히 멈추게 된 것이다.
감호실 내 모든 인원은 충격에 얼어붙은 듯 서로를 돌아보았다. 방금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찝찝함과 묵직한 당혹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최민준 병원장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애써 다물며, 허둥대는 의료진에게 단호하게 지시했다.
"사망 확인서를 작성하십시오."
의료진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의 침대 옆으로 다가섰다. 한 의사가 최종 사망 진단을 위해 그의 목 부위 맥박을 확인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흐어억!”
깊은 물속에서 간신히 튀어나온 듯한, 이안의 거친 숨소리가 다시금 감호실의 끈적한 적막을 깨트렸다. 의사와 간호사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들의 얼굴은 경악과 공포로 일그러졌다. 이안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떨리더니, 마침내 아직까지 희미한 푸른빛이 스치는 눈을 크게 뜬 것이다. 그의 시선은 생기 없이 텅 비어 있었던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깊은 혼란과 함께, 모든 것을 처음 받아들이는 존재의 원초적인 공허함이 서려 있었다. 의료진의 날카로운 비명이 순식간에 감호실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시계는 이미 정오를 한참 지나고 있었다.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국립법무병원 인근의 성 미카엘 성당에서는,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기리는 장엄한 부활절 미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