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안아주는 게 정답일 때가 있어
그날 저녁.
형준은 체육관에서 혼자 땀을 빼고 있었다.
운동하며 땀을 흘리다 보니 머릿속이 정리됐다.
예린의 말도 컸고,
사촌 가은이의 ‘야 너 진짜 뇌 있어?’로 시작된 폭풍 잔소리도 큰 역할을 했다.
생각 정리가 제대로 된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 진심을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괜히 혼자 열내고, 혼자 상처받고, 진짜… 바보였네.”
형준은 밝은 표정으로 체육관을 나왔다.
그 순간.
쏴아아 아아아!!
하늘이 터졌다.
굵은 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형준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아 진짜 오늘 되는 일이 없네!! 뭐냐고 진짜!! 짜증 나게!!!”
그러곤 운동화 소리가 바닥을 튀기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 골목을 지나던 형준은,
작은 벤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비를 다 맞은 채, 벤치에 앉아 있는 익숙한 여자아이.
정연이었다.
정연은 혼자 있고 싶다며 친구들을 다 돌려보내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형준은 단숨에 달려가,
자신의 가방을 번쩍 들어 정연 머리 위에 올려 막아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연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눈엔 아직도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형준은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고,
그녀를 힘껏 안았다.
“… 내가 잘못했어. 다 알아줄 거라 생각했었어.
진짜 너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
말도 이쁘게 못 하고, 행동도 못해줘서 미안해.
진짜… 감기 걸리겠다…
이제 그만 비 맞고… 집에 가자.”
정연은 형준의 품 안에서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작게 흐느끼다,
결국 울면서 말했다.
“나도… 미안해… 당연한 줄 알았어…
네가 항상 잘해주니까… 앞으론 안 그럴게…
화내지 말아 줘…”
형준은 더 세게 정연을 끌어안았다.
“마지막에 한 말들… 진심 절대 아니니까…
진짜 마음에 담지 마.
나, 너 없이 어디 가… 못 가.
앞으로 우리… 좋은 쪽으로 달라지자.
서로 이야기 많이 하고…
내 생각 네가 다 알 거란 착각 안 할게.”
정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기적처럼 비가 멈췄다.
형준은 정연의 눈물을 닦아주며 환하게 웃었다.
“와… 정연이가 진짜 날씨요정이었나 봐.
펑펑 울 땐 비 오고, 안 우니까 뚝 그치네?”
정연은 형준을 째려보다가
팔과 등짝을 연달아 때렸다.
“아무리 화났어도!! 누가 욕하고 무서운 말 하래!!
이건… 진짜 맞아야 해!!”
형준은 퍽퍽 맞으면서도 웃는다.
그리고는 정연을 번쩍 들어 올린다.
“우리 이제 솔직해지기로 했지? 사랑스러운 정연 공주님~
그 무서운 말은 말이야, 백만 프로 진심이야~
정연이가 말려도 소용없어!
또 그러면 진짜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이거 내일 꼭 전해~”
정연은 들린 채로 형준을 주먹으로 때리며 소리쳤다.
“아직도 반성을 덜 했구먼!!
나 또 운다!! 진짜로!!”
형준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응~ 어차피 비 맞아서 다 젖었는데 뭘~
한 번 더 울면 되는 거지 뭐~”
정연은 못 말린단 듯이 웃었다.
살짝 삐져 있었던 마음이,
비처럼 조용히 그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