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대신 피켓 들었어요
그날의 교무실
형준이 울분을 터뜨리던 그날.
나래 엄마의 외침과, 담임 선생님의 침묵.
그 모든 장면은 소문이 되어 반나절도 안 되어 학교 전체를 휩쓸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일어날 거라는 걸.
형준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했다.
“그냥... 우리 우리 방식대로 가자.”
그 한 마디에, 덕군 컴퍼니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덕은 잽싸게 제티와 젤리를 꺼내 들었고,
대용은 어디선가 메가폰을 찾아왔다.
“이건 그냥 소리 지르는 게 아니야. 퍼포먼스라고.”
규만은 곰돌이 캐릭터가 그려진 도화지에 붉은 글씨를 써 내려갔다.
“전쟁터보다 무서운 학교”
“눈물 나는 학생, 미소 짓는 학부모”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그리고, 예린이.
작은 손으로 쓴 쪽지를 조용히 내밀었다.
“... 그냥,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야.”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전날 밤 만든 팻말을 들고,
월드컵 붉은 악마 응원도구를 착용한 채 교육청 앞으로 모였다.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야.” 형준이 말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울려 퍼진 익숙한 멜로디.
우덕과 대용이 편곡한 '학교 종이 쨍그랑'이었다.
학교 종이 쨍그랑~
어서 모이자~
경찰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학교 종이 쨍그랑~
어서 모이자~
진상 학부모가 우리를 기다리신다~
순식간에 따라 부르는 아이들.
사람들은 멈춰 섰고, 교통은 잠시 정체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대용이 메가폰을 들고 소리쳤다.
“인성초는 반성하라!!”
형준의 목은 이미 쉬어가고 있었지만,
눈빛은 결코 흐려지지 않았다.
결국, 교육청은 혼란에 빠졌다.
교장 선생님이 급히 차를 몰았고,
담임 선생님은 민지, 정연, 지수를 차에 태우며 짧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뭘 해야 하는지 잘 알지?
선생님이 좀… 부탁할게. 정말 너희가 필요해...”
정연은 눈을 감았고,
지수는 창밖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민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청 앞에 선생님들이 도착하자, 아이들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종이 깔판도 없었다.
그리고, 메가폰을 든 예린이.
“저는 화장실에서 괴롭힘을 당했어요.
우정카드엔 정말 상상도 못 할 욕들이 쓰여 있었어요.
근데… 아무도 진짜로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는 어제 제가 괴롭힌 거 아니냐며!! 교무실에서 경찰 아저씨를 만났어요!!”
그 외침에 울먹이던 몇몇 아이들이 따라 일어섰다.
형준은 다시 메가폰을 들었다.
“이건 어른들이 우리한테 가르친 거예요.
증거 없이 혼내고, 때리고 한쪽 말만 듣고 벌주고.
그래서 우린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행동한 거예요.
자기 딸이 귀하면 남의 딸도 귀한 건데 어떤 아줌마는 냅다 남의 딸 머리부터 때리더라고요!!”
규만도 메가폰을 잡았다.
“친구랑 손잡고 가라고 학교 보내놓고!
학교에선 친구를 밟고 가야 이기는 게임을 시켜요!!
그리고 심지어 어른들이 그걸 부추겨요!!”
그 순간, 민지가 달려왔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두고 이리 와!! 아침부터 무슨 짓이야!!!”
정연도 형준을 향해 소리쳤다.
“형준아!! 내가 너 억울한 거 모르냐?!
근데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제발 이리 와...”
지수는 대용을 향해 걸어갔다.
“야!! 나대용!! 메가폰 내려놓고, 나한테 줄 하트나 접어!
어른들이 그렇다고 우리도 똑같이 하면...
그럼 우리도 그냥 그런 어른 되는 거야.”
우덕은 고개를 돌리며 메가폰을 들고 말했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인데!!
어른들이 그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어요!!!”
민지, 정연, 지수는 동시에 외쳤다.
“우덕이 너도 내려놔!! 이리 와!!”
아이들을 가까스로 달래 교육청을 떠났을 때,
학교 운동장엔 경찰차가 서 있었다.
“최수빈, 유정연, 김민지, 정예린 어린이… 교무실로 와 주세요.”
4명의 아이들이 교무실로 향하자,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또 외침이 터졌다.
“최수빈을 강력 처벌하라!!”
“화장실 폭행사건 진실을 밝혀라!!”
“우정카드, 진실을 밝혀라!!”
선생님들이 또다시 뛰쳐나왔고,
운동장엔 다시 아이들이 드러누웠다.
“교실 들어가기 싫어요!!! 무섭단 말이에요!!!”
그리고, 교무실.
문은 닫혔고, 경찰과 네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숨소리만이 공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