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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결심, 더 다닐 수 있었지만 그만두다

1-1. 이제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by 일이사구

지옥 같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내보내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과도 있었고, 인정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승진도 했고, 흐름도 괜찮았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속은 달랐다.

이번은 유난히 힘들었고, 이상하게도 공허했다.


수많은 회사를 다니며 배움도 있었고,

도전의 순간마다 나는 성장했다.


위험한 프로젝트를 돌파할 때마다

“아직은 할 만하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런데 똑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새로운 시도는 외줄 타기였고,

조직은 언제든 방향을 바꿨다.


나는 늘 지치지 않는 존재여야 했다.


버티는 법은 익숙했다.


플랜 A가 안 되면 B,

B가 안 되면 C.


시나리오를 짜고, 설득하고, 실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자리는 결국 틀 안의 사람이었다.


넘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모든 직장인이 언젠가 마주하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육체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의 그림자였다.

언젠가 내 역할이 자연스럽게 축소될 거라는 불안.

너무 당연해서, 그래서 더 서글픈 진실.


동네 아저씨가 되기는 싫었다.

그게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때부터 질문이 따라다녔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러고 있지?

이게 계속되면, 나는 남아 있을까?”


고독했고, 지쳤다.

퇴근 후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월급명세서를 붙잡고 억지로 의미를 만들던 나.


그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회사는 나에게 잘해주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책임의 무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

늘 누군가에게 보이는 자리.


나는 조금씩 소모되어 갔다.

개인적 균형도 무너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는 버틸 이유가 사라졌다.


내가 평소에 믿었던 신념이 떠올랐다.


짧고 깊게 생각하고, 행동은 빠르고 과감하게.


그럼에도 두려워서, 몇 달을 망설였다.


더 다닐 수 있었다.

성과도 있었고, 보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가,

더는 내 삶을 붙잡을 핑계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을 지켜야 했다.


그 단순한 진실이,

그토록 오랜 망설임 끝에야 나를 움직였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내가 왜 1249를 시작했는지.


패배도, 탈출도 아니었다.


그저 내 삶과의 새로운 약속이었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짐도 온다.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별이자 약속,

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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