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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속도는 비대칭이다

5-5. 곡선의 시간, 임계점의 법칙

by 일이사구

어릴 적 레고 블록으로 성을 만들던 기억이 있다.

작은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며 완성된 성을 상상했다.

처음엔 설명서를 따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만의 구조를 만들고 싶어졌다.


물론 필요한 부품은 늘 없었고,

형태는 자주 무너졌다.

하지만 어느 날, 작은 조각들이 하나의 형태를 이룰 때—

그 감각은 잊히지 않았다.


실패의 루프를 다시 설계하고 나서,

나는 성장의 속도를 새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축적의 마법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믿는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면, 언젠가 큰 변화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달라졌다고 느낄 만한 성장은

매일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직선의 착각이다.


성장은 어느 날, 한순간에 방향을 바꾼다.

그전까지의 시간이 헛된 게 아니라,

곡선의 전환점(S-Curve)을 향해 축적되고 있었을 뿐이다.


경영학에서 S-Curve는

기술이나 기업의 성장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초기에는 느리고, 중간에 폭발하고,

정점에서 다시 완만해진다.


개인의 성장도 이 곡선을 그대로 따른다.

나는 지금 그 곡선의 전환 구간 어딘가에 서 있다.

멈춘 게 아니라, 다음 단계로 옮겨가기 직전의 고요 속에 서 있다.


언어에서 깨달은 성장의 법칙

처음 그걸 체감한 건 언어를 공부할 때였다.

문법과 단어를 아무리 외워도 늘지 않았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문법 대신, 매일 뉴스를 들으며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의미는 몰라도 리듬을 익혔다.


그런데 어느 날, 외국인과 30분 넘게 대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전날엔 불가능했는데, 다음날엔 가능했다.


그건 기적이 아니라

수백 번의 정체와 시행착오가 누적된 결과였다.


IT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Learning Curve(학습 곡선)이 바로 이것이다.

처음엔 투입 대비 효율이 낮지만,

반복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효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성장은 직선이 아니라, 계단형 누적이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임계점(Critical Point)이 차오르고,

그 순간 곡선이 궤도를 바꾼다.

전편 <5-4>에서 언급했던 임계값(Threshold)과는 다른 개념이다.

임계점(Critical Point)은 그 기준을 넘어서는 전환의 순간이다.


전편 | 〈5-4. 실패와 성장, 넘어짐이 나를 키운다〉에 다듬은 루프 위에,

이 곡선이 놓여 있습니다. 먼저 읽으셔도 좋습니다.


인식의 전환 — 정체기의 가치

우리는 ‘노력 = 즉시 결과’라는 선형 사고에 익숙하다.

하지만 인간의 학습은 비선형적 누적이다.


뇌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 반드시 혼란기를 거친다.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임계점을 넘을 때 패턴 인식이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AI의 강화학습에서도 마찬가지다.

딥러닝은 확률과 유사도를 근거로 동작한다.


처음엔 무수한 실패를 반복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상 함수를 이해하며

탐색(Exploration)에서 활용(Exploitation)으로 전환한다.


그 순간, 그래프는 수직으로 치솟는다.

인간도 비슷하다.


혼란과 반복의 시간 뒤에, 사고의 회로가 새롭게 연결된다.

정체처럼 보이는 시간은 사실 탐색의 구간이다.

탐색 없이 활용만 계속하면 금세 소진된다.


정체는 실패가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을 조정하는 내면의 시스템 리부트다.


항아리의 법칙

한국판 신데렐라 이야기인 ‘콩쥐팥쥐’를 떠올려보자.

새어머니와 팥쥐는 잔치에 가려면

“이 독의 물을 가득 채우라”라고 명령했다.


콩쥐는 온종일 물을 길어 부었지만,

밑이 깨진 독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두꺼비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콩쥐야, 내가 구멍을 막아줄 테니 물을 채워라.”


그래, 중요한 건 물을 채우는 게 아니라

구멍을 먼저 막는 일이다.


진짜 문제는 물의 양, 즉 ‘노력’이 아니라

항아리의 구조다.


커다란 물항아리를 떠올려보자.

그 항아리의 크기는 당신의 비전,

항아리의 구멍은 전략의 부재,

그리고 매일의 행동이 그 안을 채우는 물이다.


시스템 사고(System Thinking)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요소’가 아니라 ‘관계 구조’에 있다.

결국, 실패의 루프를 다듬는 일은 곧 시스템의 균열을 메우는 일과 같다.


항아리가 새고 있다면,

아무리 물을 부어도 소용없다.


성장은 노력의 합이 아니라 시스템의 정렬,

즉 요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과정이다.


비전 없는 물 채우기는 무의미하다.

방향이 없으면 전환도 없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말한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열심히의 함정

아직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90년대의 서사다.


지금의 성장은 노력의 양이 아니라 전략의 밀도에 달려 있다.


Kaizen(개선) → Kaikaku(개혁) → Kakushin(혁신).


일본의 경영철학이 말하듯,

작은 개선이 쌓여 개혁을 부르고,

임계점을 넘으면 혁신이 터진다.


꾸준함만으로는 도약이 없다.


방향 + 전략 + 법칙의 이해가 맞물려야

비로소 곡선은 폭발한다.


노력만을 강조하는 건 좁은 인식이다.

그런 조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조언을 듣는 사람에게는

좌절과 자책만 남긴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하라’는 조언이 인기를 끈다.

좋은 말이다. 위안도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열심히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

방향 없는 열심히는 공허하다.

그래서 수많은 직장인들이 공허한 것이다.


남의 독에 물을 채우는 일만 반복하면서도,

정작 자신만의 항아리는 구멍 난 채로 방치하기 때문이다.


<콩쥐와 두꺼비, 그리고 성장의 항아리 - AI생성 이미지>


임계점의 순간

성장의 속도는 비대칭이다.

아무 일도 없는 듯하다가, 어느 날 모든 것이 연결된다.


누구는 그걸 운이라 부르고,

나는 그걸 변화의 순간이라 부른다.


그걸 통해 얻는 것이 부이든, 관점이든, 기술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다.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꾸준함이 아니라, 꾸준함이 향하는 축적의 방향성.


성장은 반복이 아니라 패턴의 누적,

꾸준함이 아니라 도약의 타이밍이다.


다음 단계로

나는 믿는다.

성장의 순간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온다.


영원할 것만 같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터널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나와 같이 지금도 헤매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정체와 불안,

그건 멈춤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다.


당신에게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세상이 있다.


언젠가,

당신의 오늘의 노력이 세상과 만나는 그날까지 —


당신의 선택을 언제나 응원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건투를 빕니다.





✅ 참고 문헌 및 인용

van Maanen, L. et al. (2024). The Curve of Learning With and Without Instructions. Journal of Cognition, 7(1), 48.

Liu, S. et al. (2024). Automated discovery of symbolic laws governing skill acquisition from naturally occurring data. arXiv

Everett M. Rogers (1962). Diffusion of Innovations — 기술 및 아이디어 확산의 S-Curve 모델.

Peter M. Senge (1990). The Fifth Discipline — 시스템 사고와 학습 조직 이론.

Masaaki Imai (1986). Kaizen: The Key to Japan’s Competitive Success — 개선 → 개혁 → 혁신의 누적적 성장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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