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밑바닥을 보았다.
남편과 한창 전쟁 중일 때는 육아도 전쟁 중이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둘째와 항상 울음으로 시작 하는 첫째.
무엇보다 첫째의 예민함은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 할수록 아이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밑바닥까지 보고야 말았다.
엄마가 된 건 처음인지라 서툴기도 했지만 미숙한 감정처리는 매번마다 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육아를 출장이 잦은 남편에게 의지할 수도 없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온전히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했다.
결혼 전 길 가다가도 엄마 혼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모습만 봐도 짠한 마음이었는데 미래의 내 모습인 걸 그때 알았던 걸까.
요즘 젊은 아빠들이 아이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병원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서 우리 집안의 문제인 건지 세대 차이인 건지 보기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첫째 아이의 예민함이 나를 건들 때면 나의 감정을 폭발시키고서야 죄책감에 유튜브를 찾아보곤 했었다.
법륜스님의 말씀도 듣고 다양한 육아 박사 선생님들의 조언도 찾아가며 들었다.
그 중에 조선미 박사님의 강의는 정말 내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었다.
수많은 육아서에는 엄마가 이렇게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 이런 것들 뿐이었는데 조선미 박사님의 이 한마디는 그동안의 짐이 다 내려지는 기분이었다.
“육아가 왜 힘든지 아세요? 너무 잘 키울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맞다. 너무 잘 키울려고 하다보니 힘든 것이었다.
요즘엔 아이에게 이렇게 해줘야 되고 저렇게 해야되고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 지 내 몸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데 너무 많은 육아서들의 가르침이 나를 버겁게했다.
아이에게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이거 해야 되고 저거 해야 된다는 말들에 휘둘려 내가 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부족함으로 첫째 아이의 감정을 보듬어 줄 수 없었음에도 아이는 바르게 잘 자라고 있다. 나는 매번 화내고 감정조절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점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 나가고 있었다. 너무 부족한 엄마였지만 그렇게 아이들은 스스로 햇빛을 찾아 자라났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과거에 찍은 사진들을 발견했다.
너무 힘들다고 내 연민에 빠져있을 때 사진 속에는 너무나 밝게 웃고 있는 나와 아이들이 있었다. 매번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누워 있었고 어디에선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면 나의 왜곡된 기억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면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