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7

by 슬로우

새벽 5시 17분.


정하민은 눈을 떴다. 늘 그렇듯 알람보다 먼저, 자연스럽게 어둠을 깨고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하민은 더 자고 싶었지만 습관처럼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노트 위에 손이 오래 머물렀다.


어제 커피숍에서 받았던 ‘얼음 네 개’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자기를 배려해 준 거였다.


"가끔은 기준을 바꿔도 괜찮을 때가 있어요."


그 말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민은 오늘따라 문제집을 펴는 손이 느렸다. 책장을 넘기는 타이밍도, 형광펜을 잡는 각도도 조금씩 어긋났다.


그는 갑자기, 한참을 바라본 적 없던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눈 밑은 어두웠고, 턱 선은 무뎌져 있었고, 입술은 마르기 직전이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자신을 안 보고 살았는지를.


잠시 후, 그는 노트북 폴더를 뒤져 몇 달째 업데이트하지 않은 이력서 파일을 열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중소기업이든 어디든 취업을 해야하나 고민하며 써왔던 이력서이지만, 사실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란 말 말고는 별로 쓸 말이 없어서 빈 서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 아래 빈칸에 처음으로 새로운 단어를 써보았다.


‘관심 있는 분야: 글쓰기’


이 한 줄을 쓰는 데 십 분이 걸렸지만, 그 문장은 그날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오후가 되자 그는 다시 ‘더 슬로우’에 갔다. 이번엔 벽면 자리가 아닌 창가 자리에 앉았다. 햇살이 얼굴을 조금 밝히는 자리였다.


커피는 여전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하지만 이번엔 얼음 개수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도윤이 내주는 대로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어제와는 다른 하루였다.


도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메모했다.


‘오늘의 하민 씨는, 얼음의 개수보다 햇살의 양을 선택했다.’


정하민은 여전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여전히 답답한 시간 속에 있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하루에 작은 틈 하나쯤은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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