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이 조용히 다가와 말없이 얼음이 세 개가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하민은 고개를 들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이 커피도, 진짜 간발의 차이로 맛있네요.”
도윤은 웃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가끔은… 진짜 중요한 문제는 시험지엔 없더라고요.”
하민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이, 마음 한 편을 오래도록 울렸다.
그는 늘 그랬다. 책장 옆, 출입구에서 가장 먼 자리.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앉을 수 있는 곳이 그의 지정 좌석이었다. 그는 책을 펼치고 형광펜을 잡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가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면 ‘더 슬로우’에서 공부를 한다. 아니, 공부를 하는 척을 한다.
창밖에는 느릿하게 벚꽃이 흘렀고, 커피숍에는 조용히 음악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민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며칠 전, 자신이 먼저 차지한 자리를 본인의 자리를 빼앗긴 듯 머뭇거리다 다른 자리를 차지했던 그녀였다.
오늘은 그녀가 하민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하민은 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 오늘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얼음은 세 개였지만, 커피는 점점 색이 옅어져 갔다.
도윤이 다가와 컵을 가져가며 물었다.
“오늘은 얼음이 좀 부족했나 봐요.”
하민은 무심한 척, 짧게 답했다.
“그냥… 좀 오래 앉아 있었어요.”
그 말에 도윤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새 컵에 얼음을 네 개 넣어 건넸다.
“이건 서비스예요. 가끔은, 기준을 바꿔도 괜찮을 때가 있더라고요.”
하민은 커피를 받아 들고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작게, 아주 작게 웃었다. 그건 어떤 격려도, 충고도 아니었다.
그냥 ‘오늘은 당신의 마음을 인정합니다’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날 저녁, 하민은 책상 앞에 앉아 형광펜 대신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글씨를 적었다.
‘얼음 세 개가 네 개가 된 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온기를 나눈 날.’
창밖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하민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봄이, 얼음 하나만큼의 여백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