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민은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자명종도, 알람도 없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형광펜, 요약집, 문제집.
그는 여섯 번째 봄을 같은 책으로 맞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
처음엔 사람들에게 자주 말했다.
“시험 준비 중이에요.”
“곧 결과 나올 거예요.”
지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광장동 광나루역 근처, 하민은 ‘더 슬로우’ 커피숍에 들어섰다. 이곳은 그가 가끔 공부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문을 열자마자 종소리, 그리고, 도윤의 눈인사가 이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얼음은… 세 개만 부탁드려요.”
하민은 주문을 마치고 습관처럼 ‘더 슬로우’의 구석 자리에 앉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윤은 이미 안다. 그의 커피잔이 비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과는 좋지 않았다는 것을.
하민은 핸드폰을 뒤집어 탁자에 내려놓고, 깊은 숨을 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탈락 통보를 받았다.
9급 공무원 국가직, 지방직, 교육행정직, 국회직 등 비슷한 과목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험들을 매년 준비하지만 늘 비슷하게 끝났다.
‘이번엔 아깝다. 두 문제만 맞혔으면…’
그 '두 문제'가 문제였다. 매번 아쉽게, 거의 다 왔다는 착각이 그를 붙잡았다. 실패는 명확했지만, 희망은 흐릿하게 곁에 머물렀다.
하민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부한 게 몇 년인데… 이걸 그만두면, 난 뭐가 남지?”
이미 5년.
고시원에서, 도서관에서, 한겨울과 장마철을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버틴 시간. 버린 시간이라 부르기엔 너무 애썼고, 애쓴 시간이라 말하기엔 얻은 게 없었다.
가끔은 자신이 공부를 하는 건지, 공부라는 이름의 굴레 속에 갇힌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민은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되뇌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이번엔 붙을 거야.’
하지만 그 간격은 언제나 좁혀지지 않았다.
딱 두 세 문제.
희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그 희망이 가장 잔인했다.
그는 어렴풋이 안다. 시험이 아니라, 시험 준비에 중독된 자신을.
매일 정해진 루틴, 벗어날 수 없는 일정표, 반복되는 모의고사와 인강.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보다, 벗어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더 무서웠다.
‘시험을 포기하면… 난 뭘 하지?’
답이 없었다.
스무 살에 처음 마음먹은 공무원. 그때는 금방 공무원이 될 걸로 생각했다. 공부를 시작하면 2년이면 충분히 합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는 다른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합격’ 이후의 삶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문제집을 펼치고, 인강을 듣는다.
하지만, 붙을 듯 멀어진다. 하루가, 일 년이, 청춘이 그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