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11

by 슬로우

오전 10시 45분.


서지윤은 오늘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커튼처럼 쏟아지는 창가 자리였다.


그녀는 며칠 전 정하민과 나눈 짧은 대화를 떠올리며 괜히 오늘은 좀 더 단정하게 머리를 묶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라기보다 누군가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문이 열리고, 하민이 들어왔다. 지윤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그의 걸음소리는 이제 익숙해졌다. 무겁고 조용하지만, 리듬은 일정한 발걸음이었다.


하민도 그녀를 봤다. 그녀가 오늘은 책 대신 작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도 창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지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지윤은 하민이 막내 동생같이 느껴져서 짧은 인사 정도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네, 또 뵙네요.”


하민도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지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기 자주 오세요?”


“네. 도서관에서 공부 안될 때 가끔 오는데, 요즘은 여기가 편해서 거의 매일 와요.”


하민은 쑥스럽게 웃었다.


“저도 요즘 여기가 제 시간의 쉼표예요.”


지윤은 라떼 잔을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가끔은 편안한 공간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말이 지금까지 이곳을 찾았던 자신의 이유와 닮아 있다는 걸 느꼈다.


도윤은 멀리서 그 둘을 바라보며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둘은 아직 서로를 잘 모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편안한 거리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윤이 잠시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이거… 재취업 교육 신청했어요. 막상 시작하려니 무섭긴 하네요.”


하민은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저도 요즘… 공무원 시험이 맞는지 다시 생각 중이에요.”


말을 꺼낸 순간, 둘 다 놀랐다. 이런 얘기를 커피숍에서 만난 사람에게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빠져나오자 가슴이 가벼워졌다.


“요즘엔 실패보다 멈추는 게 더 두려워요.”


지윤이 말했다.


“저는요… 그 멈춘 걸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방향을 바꾸는 거라고 생각하려고요.”


하민이 대답했다.


하민과 지윤, 둘 다 어딘가 사회의 중심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무원 준비생과 경단녀라는 전혀 다른 상황의 두 사람이지만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쁘게 하루를 오가는 사람들의 흐름에서 조금씩 밀려나 조용히 구석에 머물러 있는 두 사람.


그래서였을까? 서로 자주 마주친 것도 아니고, 이름을 아는 것도 아닌데 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묘한 공감이 스쳤다.


‘나도 당신처럼 조금 어긋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기류가 흘렀다. 그래서 민감할수도 있는 재취업 교육 얘기나 공무원 시험 준비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커피숍 ‘더 슬로우’에는 평소보다 오래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말이 많지 않았지만, 말보다 오래 남는 순간들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지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잔을 치우려다 말고, 하민의 컵을 슬쩍 가리켰다.


“제가 갖다 놓을게요. 오늘은 제가… 좀 더 덜 무기력한 것 같아서요.”


하민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그리고 진심으로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날 저녁, 도윤은 두 개의 빈 잔을 바라보다 메모장 한 구석에 이렇게 적었다.


‘한 사람은 방향을 바꾸려 하고, 한 사람은 멈춘 걸 ‘괜찮다’고 말해줬다. 둘 다 아직 많이 흔들리지만, 괜찮다. 인생은 흔들리는 게 일상이니까.’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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