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12

by 슬로우

오후 5시 20분.


커피숍 ‘더 슬로우’의 문이 열렸다. 도윤은 시간을 보지 않아도 그가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문기였다.


그는 말수가 적고, 눈빛은 멀리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다. 문기는 카운터 앞으로 와서 익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요.”


그리고 늘 앉는 자리로 가더니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책은 오늘도 펼쳐놓기만 한 채로…


도윤은 커피를 내려 그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슬쩍 말을 건넸다.


“요즘은… 햇살이 오후엔 더 짧아지죠.”


말이라기보다, 건네는 숨결에 가까운 한마디였다.


최문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네요. 해도, 퇴직도… 짧아지는 시기죠.”


그 말에 도윤은 조금 더 문기의 테이블 옆에 머물렀다.


도윤은 잠깐의 대화였지만, 최문기가 누군가와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최문기라는 사람에 대해… 그가 왜 매일 비슷한 시간에 커피숍을 찾는지, 조용히 말없이 앉아있다가 쓸쓸히 돌아서는지…


도윤은 카운터로 돌아가지 않고, 의자 옆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불편하지 않으시면, 잠깐 같이 앉아도 될까요?”


최문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람이 말없이 옆에 앉는 걸 그렇게 반가워하게 될 줄은… 예전엔 몰랐죠.”


둘은 잠시 아무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문기가 입을 열었다.


“교사 생활을 서른 두 해나 했네요. 그만두고 나니… 축하보다는, ‘잘 버텼네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 누군가 해주지 않았나요?”


문기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전부터 말 대신 꺼내 들던 표정 같았다.


“아내는 요즘 말이 없어요. 애들은 자기들 인생 살기 바쁘고요. 저는요… 이 커피가 하루에서 제일 따뜻한 말 같아요.”


문기의 말끝이 조금 씁쓸했다. 도윤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도… 여기서는 매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기가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 살짝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여기선… 말없이 있어도 괜찮아서 좋아요.”


두 사람 사이엔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도윤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고, 잠시 후 문기의 머그잔에 커피를 다시 채워주었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위로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문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최문기의 눈빛엔 조금 덜 쓸쓸한 온도가 깃들기 시작했다.


문기는 도윤으로부터 특별한 무언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위로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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