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 가을.
나는 한여름 한낮의 정오 무렵에 태어났다. 자축인묘.. 하는 열 두 간지 기준 일곱 번째 해,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일, 간지 기준 일곱 번째 시에.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생일을 말할 때면 행운의 여신이라고 소개한다. 그렇지만 누가 좋아하는 숫자를 묻거나 숫자를 고를 일이 있을 땐 4를 선택한다. 44나. 이유는 누구나 럭키 세븐만 좋아하니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죽을 사(死)와 같은 소리를 낸다고 기피당하는 불쌍한 4를 나라도 골라주고 싶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태어나서 그런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특히 초여름. 지독한 꽃샘추위가 싫어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꽁꽁 싸매고 다니던 두꺼운 껍질옷을 벗고,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 연보라색 같은 옅은 파스텔톤의 살랑살랑 가벼운 옷을 꺼내 입으면 기분도 함께 산뜻해진다.
여름 하늘의 청량한 색도 벅차게 좋고, 이글거리는 태양도 강렬해서 좋다. 황사 낀 뿌연 봄이나 쌀쌀한 계절의 바다는 왜인지 어둡고 사연 있는 듯 음울하게 출렁이는데, 여름 바다의 파도와 윤슬은 반짝반짝 빛나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물(술)을 많이 마시기도 하고, 바다나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가슴속에 꽉 들어찬 걱정이 커다란 물에 섞여 흘러가는 것만 같고.
무엇보다 비. 비 내리는 날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다. 좀 미친 여자 같지만 심지어 우르르 쾅쾅 폭풍우 치는 날에도 기분이 방방 뜬다. 여름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맛비는 지저분하게 구석구석 낀 세상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아서, 쏴 내리는 빗줄기 소리도, 비 내린 후 싱그러운 초록의 냄새도 너무 좋다.
슬슬 밤공기에 냉기가 스민다. 여름밤 특유의 후덥지근하지만 몽글한 온기가 사라지고 있다. 차라리 아예 한겨울이 되면 기온과 별개로 함박눈이 주는 나름의 포근함이 있는데, 공기의 온도가 영상에서 영으로 향해갈 무렵, 스멀스멀 파고드는 냉기가 제일 무섭다.
그 무렵이 되면 나는 한평생 살면서 겪은 온갖 서럽고 속상하고 슬픈 기억이 마구 떠올라 우울해진다. 막내 시절부터 근 10년 가까이 내 인간 일기장 역할을 해온 선배님이 있다. 가을에 내가 이런저런 음울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인간 일기장 선배님은 또 계절병이 도졌나 보네요, 한다. 폭염을 지긋지긋해하면서 가을을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인데, 나는 왜 이렇게 여름을 떠나보내는 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가을이 왔다는 것은 연중 반이 지나갔음을 의미하니까, 반올림하면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해가 짧아져 어둑한 밤의 비중이 커지고, 그럼으로써 칩거가 더 길어져 잡념이 늘어나는 탓인지 모르겠다.
추위를 유독 싫어하는 건 내 가난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난방을 잘 안 튼다. 겨울엔 집안에서도 꽁꽁 얼어 내 가느다란 손발이 성냥팔이 소녀처럼 보라색이 된 채로 지낸다. 대신 몸을 감쌀 담요나 두꺼운 수면 잠옷을 색깔별로 산다. 내겐 보들보들한 담요나 포근한 수면잠옷 같은걸 왕창 사들이는 병이 있는데, 패브릭병이라고 한다. 의학계 정식 병명은 아니고 내가 지어낸 병이다.
러시아식으로 도수 높은 소주를 마시거나 실내 자전거를 타서 자체적으로 열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엄마는 쓸데없이 헝겊쪼가리를 한 무더기 사고, 술이나 퍼먹고, 실내자전거 같은 걸 사들일 돈으로 차라리 난방을 틀라고 한다. 그 말이 합리적인 건 나도 인정하는 바지만, 사람마다 지출과 절약의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존중받고 싶다. 패브릭병이 쉽게 낫는 병이 아니기도 하고.
아직도 에어컨을 틀고 지내긴 하지만 진작에 입추도 지났고. 가을이 되면 나는 한 해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올 상반기를 워낙 격정적으로 보냈던 터라 언제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챘다.
나는 이미 너무 늙어버렸다. 너무 오래 살았다. 우리 선배님은 또 계절병이 도졌네요,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