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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는 고통과 즐거움

건강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

by Ubermensch






내가 다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마라토너 출신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으로 하여금 운동장 다섯 바퀴이던가, 열 바퀴이던가를 매일 뛰게 했다. 반년마다 4Km 마라톤 대회도 개최했다. 일정 시간 내 완주를 하면 금메달을 줬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뛰어서 대회 때마다 금메달을 꼭 받았다.


어릴 때 너무 마르고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랬는지 엄마는 동네 문화센터 수영장에 나를 보냈다. 수영을 하면 엄청 허기가 지고 밥을 잘 먹게 된다. 학교 방과 후 교실로 배드민턴, 스쿼시도 배웠다. 중학교 때는 검도를 배웠다. 고등학교 때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학교 재단은 부유해서 교내 실내 골프장이 있었다. 체육시간에 골프를 쳤다. 나는 체육시간에 떠들다 골프채로 엉덩이를 맞았다. 요즘 세상에 여고생 엉덩이를 골프채로 때리는 교사가 있다면 입건이 될 거다. 무용 수업도 따로 있었다.


입사를 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부터 꾸준히 운동을 했다. 요가와 필라테스, 발레핏(발레+필라테스가 결합된 운동)을 수년간 했고, 플라잉요가(천에 매달려 날아다니고 뒤집어지는)도 오래 했다. 폴댄스는 후배가 같이 가달라고 해서 체험을 한 번 해봤는데, 유교걸인 나로서는 봉춤의 기원과 노출이 심한 차림새가 영 내키지 않았고, 한축 회전이라 근육의 고른 발달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봉에 매달려야 하므로 내 섬섬옥수에 굳은살이 생기고, 허벅지에 멍이 든다고 해서. 내 몸은 소중하기 때문에 폴댄스는 일회성 체험 이후로 더 배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헬스도 1년간 꾸준히 했다. 열심히 했더니 부작용으로 옷 핏이 미세하게 건장하고 우람해지는 게 느껴져서 그만뒀다. 나는 실내 여성전용 운동이 제일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여러 종목을 거쳐 최종 정착지는 발레였고, 이다음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생각이다. 중기 목표는 라 에스메랄다 작품으로 비전공자 콩쿠르에 나가는 거다. 화려한 튜튜도 입고, 머리에 꽃도 달고.


등산은 불륜하는 중년 커플이나, 퇴직 무렵의 노인들만 하는 줄 알았다가, 코로나시기 2030 세대 등산 붐이 일면서, 산을 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까지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도 기분좋고,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줘서 산에 자주 가고 싶어진다. 몇년 전 도심의 야트막한 산 몇 곳을 가본 게 전부이다가, 아직 등산용 근육이 충분히 자리 잡히지도 않았을 때 멋모르고 엄마와 한라산에 간 적이 있다.


3월 초였는데 한라산 중턱부터는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나는 뭔가 하나 시작하면 꼭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절대 중도 포기를 안 한다. 등반날 새벽 엄마가 분명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했는데, 물이 없단다. 입구에 편의점이 있을 줄 알았다고. 정상까지 찍고 내려오는 코스는 왕복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물이 없었다. 목이 말랐다.


중간에 엄마는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우리 딸 물 한잔만 줄 수 있나요?라고 애처롭게 물었고, 나는 창피해서 엄마랑 일행이 아닌척 다른 곳을 보다가, 엄마가 구걸해온 물을 꼴깍꼴깍 받아마셨다. 그 선량한 등산객은, 혹시 물이 없는 거냐고 물었고. 우리 모녀는 그렇다고 했다. 다음날 기사에 한라산에서 시체로 발견된 모녀가 실릴까 걱정이 되었는지, 그 선량한 등산객은 우리를 딱한 시선으로 잠시 보더니 여분의 물 한 통을 주었다. 우리가 바위에 앉아 잠시 쉴 땐 과일 도시락도 얻었다. 세상에는 참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정상에서 백록담을 구경하다가 등산스틱 하나를 실수로 떨어트린 바람에 내려오는 길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지하철에서 하체에 고무를 끼고 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하던 장애인이 떠올랐다. 내 다리를 자르고 고무를 씌우고 미끄러져 내려가면 금방 하산할 텐데. 그렇지 엄마? 했더니, 엄마는 그렇겠네. 하며 훅훅 앞서나갔다.


사실 어떤 종목이든, 운동의 과정이 마냥 상쾌하고 즐겁지만은 않다. 90퍼센트는 고통이고 그 고통을 견디는 과정이다. 유산소를 하면 호흡이 가빠 흉통이 터질 것 같고 입안에서 피맛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근력 운동을 하면 근육이 얼얼하다 못해 불에 타는 것 같다. 유연성을 요하는 동작을 할 때면 근육의 섬유가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느껴진다. 땀도 뚝뚝 흘러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다. 제대로 운동을 마치고 나면 다음날 땅에 떨어진 휴대폰을 줍기도 힘들 만큼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고통을 제외한 10퍼센트 때문에 나는, 그리고 그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운동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감수할 것이다. 내가 내 근육을 움직여 어떤 동작을 수행해 내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견디고, 단련하고, 성취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은 내 몸뿐 아니라 정신의 모양까지 아름답게 가다듬어 준다.


몸은 정직해서,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의 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몸은 태부터 다르고, 걷는 방식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 가장 좋은 점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게 된다. 거울을 마주하며 나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고, 고통을 참고 버틴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엊그제 우리 부장님이 탕비실에 초콜릿을 누가 다 먹었냐고 했다. 제가 다 먹었습니다, 했다. 부장님 초콜릿 안 드신다면서요, 했더니. 먹으면 안 돼, 난 오늘 내일 한다고. 하시길래, 부장님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고 운동을 하시면 되잖아요. 그리고 오늘 내일 하시면 안 됩니다. 전 이 부서 오면서 명함을 새로 팠단 말이에요, 했다.






건강한 성취를 위한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견딜만 하고, 견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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