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
우리 집안에는 민주당원이 많다. 진짜 민주당원인지 민주당 지지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호주에 십 년 이상 살고 있는 이모네 가족도 민주당을 지지하고. 명절 때 친척들이 모여 정치색이 짙은 이야기를 꺼내며 나에게 의견을 물어 오면 나는 입을 다문다.
대학 시절 우리 학교는 학생운동의 메카였다. 나도 학교 기자생활을 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태일 평전에 눈물 흘리고, 길가의 들풀을 눈여겨보는 사람이었고, 너무 많이 가진 자의 돈을 거두어 굶주린 자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4학년 때, 키가 184센티미터에 빅뱅의 탑을 닮은 경제학과 부산남자와 잠시 사귄 적이 있었다. 인문학도인 나는 형평을, 경제학도인 그는 효율을 추구했다.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달랐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잘생겼고 나는 못생겼고 우리의 사상은 정 반대지만 서로 이런 토론을 하는 게 너무 신선하고 좋아서 나랑 만나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박정희고,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독재가 필요하며, 광주 민주화운동을 광주 폭동이라고 말했다.
다른건 존중했으나 마지막 문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근현대사 공부를 다시 하고 오라고, 광주를 대변해 격렬하게 싸우다 헤어졌다. 나는 전라도에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있다. 우리 외가 식구들이 전라도 출신인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전라도 사투리로 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좀 있는 편이다. 아무리 내가 전라도에 대한 악감정이 있고, 그 오빠가 아무리 키 크고 잘생기고 탑을 닮았어도, 죄 없는 광주 사람들을 비하하고, 폭정에 대한 저항을 폭동이라고 표현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마르크스주의자에 가까운 좌파였던 내가 중도우파로 바뀌게 된 계기는, 공무직 수십 명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된 이후부터였다. 스무 살 때부터 온갖 종류의 일을 쉴 틈 없이 해오며 웬만한 일에는 힘들어하지 않는 편인데, 그 시기가 가장 정신적으로 피폐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 을, 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꼭 내가 책에서 보고 상상한 이미지처럼 마냥 안쓰럽고 선량하고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시 을질이라는 게 무엇인지 사무치게 경험했다. 요구에는 적정한 선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 노동조합에서 하는 요구라는 것이, 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입사한 정규직.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공무원은 감히 상상하거나 기대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거센 항의를 하거나 조직 운영 자체에 해를 끼칠 정도여서, 중간 관리자로서 무척 괴로웠다.
그때 나는 그 탑 닮은 전 남자 친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대학시절의 내가 너무 현실을 모르고 순진했구나 싶었다. 민주주의가 무조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구나. 모든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해주고 수렴하려다 보면 끝이 없고, 그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바를 맞추어 준다 해도, 그 요구는 결코 궁극적 만족에 이르지 않고, 그들의 기대수준은 상상 이상으로 올라가며, 그곳엔 결국 어떤 나태를 동반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속한 조직이 산으로 갈 수가 있겠더라고. 그래서 독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중심을 잡고 조직을 이끌 결단력 있고 유능한 리더의 필요성과 엘리트주의가 일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치적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경험적인 내 생각은 그렇다.
다시 본론인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돌아오자면, 내가 10년간 울고 웃고 사랑하며 다니던 회사인 우리 검찰이 망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검찰청에 들어오고 싶었다. 그게 내게 얼마나 간절한 꿈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다. 검찰은 부패의 상징이고, 이나라 법이 어쩌고, 하는 소리는 입사 이래 10년간 귀에 인이 박힐 만큼 들었다. 나 같은 수사관 나부랭이가 이 회사 이곳저곳에서 어떤 부패가 얼마큼 자리 잡고 있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함께 일한 검사님들, 내 동료 선후배들 중 떳떳하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검찰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해도 그렇다. 피해자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고, 악질 피의자에 분노하고, 어떻게든 이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고 싶어서 밤낮으로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대외적 이미지가 이렇게 나락에 빠져 결국 조직이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게 참 서글프다.
오늘은 갓 시험을 보고 저번주에 검찰 수사관으로서 첫 수습 발령을 받아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 수사관과 밥을 먹었다.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긴 수험생활을 거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처럼, 그 후배도 자랑스러운 검찰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했을 텐데, 취업 사기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들어오자마자 회사가 망한단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검찰의 폐지가 환호할 일이겠지만, 조직에 깊은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일해온 나와, 비슷한 심정일 동료들은 착잡하고 씁쓸하다. 다들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겠지. 교도소에 갈 수도 있고. 출입국 관리를 하며 검색대 앞에나 서있을 수도 있고, 더 이상 검찰수사관이 아닌 공소주무관이 될 수도 있고. 이런저런 짬뽕 집단인 중수청에 가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고.
오늘 아침 민주당 밭 대표 엄마가 이번 연휴 가족모임에 올 거냐고 연락이 오기에, 우리 회사를 망하게 한 사람들 얼굴 보기 싫다고 했다. 이번 연휴에는 혼자 부산에 가서 시일야방성대곡이나 쓸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