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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

소설 쓰기, 그 두 번째 이야기

by 다작이

처음 소설을 썼었던 스무 살 즈음부터 정확히 몇 편 썼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이미 완결된 작품(?)이 단편만 해도 스무 편에 이르고, 중편이 여덟 편, 심지어 장편도 네 편이나 된다. 발단부터 결말까지 마무리 지은 작품(?)도 있지만, 미완성인 채 고스란히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 잠자고 있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내가 여기에서 작품이라는 말 뒤에 굳이 물음표를 단 이유는 내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작품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허섭쓰레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등단한 작가가 아닌 이상 몇 편을 썼느냐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간의 거만함을 용서한다면 지레 겁을 집어먹을 만큼 '소설 쓰기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니'라는 말을 하려 한다. 내가 쓴 그간의 소설들이, 작품성이 있건 없건 간에 혹은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소설이라는 형태로 글을 써본 경험에 기대어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만약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소설 창작의 방법과 절차 등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거나 풍부한 양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 소설을 더 잘 쓸 가능성이 높을 순 있다. 그런데 정말 준비된 사람만이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다양한 기구가 다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운동할 수 있다거나 돈을 완벽하게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감히 말하건대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준비와 지식'이 아니라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라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사실 소설을 처음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뇌는 거의 펄펄 끓는 가마솥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어떤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와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잘 알고 지내는 누군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살면서 이만큼 온 정신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정신통일'이라는 말을 이때에 쓰면 제격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모르고 누구인지 아직 정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뇌리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물론 실존인물은 아니다. 바로 그 순간에 내 힘으로 창조해 낸 가공의 인물일 뿐이다. 뚜렷한 얼굴의 생김새도 모르면서 나는 이미 그(그녀)가 몇 살이나 먹었,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등을 훤하게 알고 있다. 심지어 그(그녀)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가며 삶에서 이루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또 이들을 둘러싼 자잘한 사건들과 예상외의 인물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솔직히 떠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모래밭에 흩어져 있는 철가루처럼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산발적으로 널려 있을 정도다.

당연히 소설의 초고를 쓰려면 이것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야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이 작업이 사실 만만치 않다. 어딘가에 적어 둘 타이밍을 놓쳐 더러는 잊어버리는 것들도 있고, 어떤 것은 구체적인 장면이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를 때쯤 원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이때 먼저 욕심을 비우는 게 좋다. 행여 증발되고 마는 것들이 있다고 해도 너무 연연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어야 한다. 괜찮다고 여긴 표현들이 나중엔 별 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또 설령 그 중요한 사항을 잊어버렸다고 해서 이후에 더 나은 표현이 찾아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가령 나는 「언니의 외출」이라는 단편소설을 처음 구상하던 단계에서 미처 정리되지 못한 낱낱의 파편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경험을 했다. 어린 동생이 언니와 함께 산다. 불면증 때문인지는 아직 규명하지 않았지만, 동생은 늘 잠들 시간에 한두 시간씩 밖을 나갔다 오는 언니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된다. 그런데 그때마다 언니의 온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풍긴다. 물론 이미 성인이 된 언니가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니가 담배를 피우느라 밤마다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하면 그다지 소설적인 상황, 즉 사건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의 옷에서 묻어나는 담배 냄새는 아무래도 그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보다 더 갈등을 유발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누가 그 담배를 피웠는지에 대한 나름의 추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결론은 일찍 아내를 여읜 뒤에 홀로 딸 둘을 부양하는 망나니나 다름없는 아버지가 되어야 가장 소설적인 스토리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나 역시 이 과정에서 놓친 생각들이 많았다. 그래도 난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려 했다. 스토리 설정에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면 잊어버릴 리가 없다고 말이다. 만약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면, 지금 당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힘으로 붙들 수 있는 표현에만 관심을 쏟는 게 좋을 거라고 믿는다.


소설 쓰기는 생각보다 긴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인 관계로 초반에 너무 무리하게 힘을 빼서 좋을 것은 없다. 그건 어쩌면 작품의 분량과는 별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중편이나 장편보다 단편을 쓸 때 더 농도 깊은 집중력이 요구되기에 굳이 우리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표현들은 과감히 손을 놓아버리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젠 작품의 수준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맞다. 처음 소설을 완성한 뒤 읽어보면 그건 수준이라는 말을 감히 갖다 붙일 수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왜 안 그렇겠는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소설을 쓰고 싶은데 두려운 나머지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큰마음먹고 완성한 첫 소설에 작품성이라는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공식적으로 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제대로 된 소설 쓰기 강좌를 들어본 경험이 없을 확률이 높다. 마찬가지로 별도로 소설 쓰기에 관해 누군가로부터 사사를 받았을 리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쓴 초고가 그 어떤 사람이 읽어도 찬사를 받을 정도라면 그는 아마도 천부적인 소설가가 될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도 꽤 오래전에 어떤 소설을 탈고한 후 뿌듯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 생애의 두 번째 작품이었을 것이다.

"뭐야? 이것도 글이라고 썼어? 어디 가서 함부로 글 쓴다고 하지 마. 가능하면 일찌감치 때려치워."

가장 지지를 받고 싶은 가족에게서 끌어낸 반응이 그 정도였으니 초기 작품이 얼마나 엉성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나마 얼마 전 아들이 내가 써 놓았던 소설 중의 몇 편 정도는 생각보다도 가독성이 괜찮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소설을 쓴답시고 고군분투한 나름의 보람과 어느 정도의 발전이 있었다는 뜻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 소설이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작품성을 논할 주제는 아예 못 되고, 그나마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뚜렷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그저 내가 읽었을 때 세상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재미있고 잘 썼다고 믿고 싶을 뿐인 것이다. 최소한 그 정도의 자부심이라도 없다면 내가 이 길고 지난한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래도 나는 소설 쓰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말을 한번 더 해 보려 한다. 만약 주변의 냉랭한 시선과 비아냥에 굳건히 버틸 자신이 있다면, 그 어떤 반응에도 꿋꿋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자신이 있다면 기꺼이 소설을 써 보라며 말하고 싶다. 또 소설을 써 나갈 때마다 겨우 이 정도의 소설밖에 쓰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바보 같다는 게 증명이 된다고 해도 이런 비관적이거나 소모적인 생각에서 초탈할 수 있다면, 소설은 그 어느 누구라도 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혹시 당신이 소설 쓰기를 마음먹고 있다면 일단 한번 저질러 놓고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희미한 그 어떤 형태로라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지금 당장 밖으로 끄집어내어 보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소설이라는 그 넓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 쓰기 작업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꽤 할 만한 작업이다. 소설을 쓰는 내내, 또 첫 소설의 완성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깊은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소설 쓰기 Tip. 1 - 일단 저지르기


일단 저지르려면 망설여선 안 된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또는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생각을 붙잡고 한두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 물론 가능하다면 그 이상 써도 좋다. 아래의 쓴 글은 위에서 언급한 「언니의 외출」중의 일부분이다. 당연히 모범 답안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걸 시범적으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예시)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 ☞ 잘 시간에 늘 한두 시간씩 어딘가를 다녀오는 언니

(예시 문장)

이번에도 한 시간 반 가까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자야 할 밤에 어디를 갔다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해 보나 마나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 시간에 어디를 다녀오는 거냐며 물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어쩐지 물어봐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된 건,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언니의 모습이 등 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방 안에 들어오자 무턱대고 언니는 한숨부터 내질렀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두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어김없이 언니는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언니는 잠에 든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빠도 같이 사는데 습관처럼 언니가 그러는 모습을 보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문을 잠근 뒤에는 반드시 언니는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럴 때마다 작은 한숨 소리가 지나갔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쉬는 숨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걱정하던 뭔가가 이제 지나가서 마음이 놓인다는 듯한 한숨이었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끝자락을 든 언니는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번엔 좀 더 가까운 위치였다. 아마 방바닥에 주저앉았거나 무릎을 꿇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마다 어쩐 일인지 자는 척해야 할 것 같아 아무리 정신이 멀쩡해도 나는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언니의 콧김이 내 얼굴에 와닿았다. 고른 숨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의식적으로 눈꺼풀을 깜빡이지 않으려 애를 써서도 안 된다. 이불을 들어 다리가 들어갈 정도의 틈을 만든 언니는 아주 조금씩 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다. 내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확신한 언니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잠잠해진다.
다음 날이면 또 일을 나가야 하는 언니는 늘 피로에 절어 있다. 특별한 몇몇 날을 제외하면 언니는 베개에 머리를 얹는 순간 잠에 빠지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방에 다시 들어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언니는 거짓말처럼 잠에 들었다.

숨소리가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 얼핏 보니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게다가 규칙적인 사이클을 보인다. 그때 어딘가에서 짙은 담배 냄새가 났다. 어디에서 나는 냄새인지 찾을 필요도 없었다. 분명히 언니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머리카락에서도 냄새가 났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잠옷에서도 풍긴다. 그런데 숨을 쉴 때도 어김없이 담배 냄새가 났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언니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물론 직장에서 나 몰래 피울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이다. 언니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심지어 우리 반 아이들도 대여섯 명은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언니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몸에도 좋지 않은 고작 담배 따위로 자기 건강을 해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언니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온몸에서, 옷에서, 머리카락에서 또 숨 쉴 때마다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걸까? 도대체 한 시간 동안 어딜 갔다 왔기에 저렇게 지독한 냄새를 묻혀 왔을까? 게다가 그렇게 냄새가 나면 어떻게든 냄새를 제거하고 방으로 들어오면 될 텐데 뭘 하다 왔는지는 몰라도 매번 들어올 때마다 뭔가에 쫓기듯 언니는 방 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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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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