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끊기+끼어들기+말 많은 그녀

-사소한 충돌, 깊은 피로


좋은 사람과의 피곤한 대화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이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해외살이 중 만난 따뜻한 사람,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가깝게 지낸 건 대략 1년쯤 되었고, 그녀가 자카르타에 정착했던 초창기 시절에 내가 잠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정작 나는 기억이 없지만, 오지랖 넓던 그 시절, 내 손을 거친 인연들이 워낙 많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정상 만나게 되는데, 문제는… 말이 너무 많다.
정말, 너무 많고 빠르다.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을 쏟아내고, 내가 말을 꺼내려고 하면 중간에 끼어들거나 아예 말을 끊어버린다. 처음엔 그냥 넘겼다. 그런데 반복되니 생각보다 정신이 지친다.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해질 정도로.

그리고, 일이 터졌다.
며칠 전,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예민해져 있던 날이었다. 개인적인 일로 속이 복잡했고, 말수가 적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날도 역시나 그녀는 차 안에서 말을 쉬지 않고 이어갔고, 내 말은 또 끊겼다.

처음엔 말했다.
“잠깐만, 나 지금 설명하고 있잖아…”


하지만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말 끊기, 끼어들기.
결국,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 말을 좀 안 끊으면 안 될까?”

화낸 것도 아니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자연스럽게, 인내가 끝나고 튀어나온 말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이후의 일정은 묘하게 어색했다.
그런 분위기를 나는 잘 견디지 못한다.

결국 물었다.

“언니,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화난 건 아니지?”

그녀는 대답했다.
“화나지, 그럼 안 나겠어?”

그리고는 곧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난 게 아니고, 민망했지. 동생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내가 직장 다닐 때 그런 말 들었으면 가만히 안 놔뒀을 텐데, 지금은 뭐 그냥 넘어가야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이해는 해. 혹시 무슨 일 있나 생각했어.”

그리고 나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진심으로 악의는 없었다.

난 솔직하게 말하는 그녀가 좋다.

그런데, 내가 잘못한 걸까?
어디까지 맞춰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어야 했을까?

“언니,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요…”
이렇게 분위기 좋을 때 부드럽게 꺼냈어야 했던 걸까.

경험으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심경을 건드릴 수 있는 말을 하면, 앞으로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안다.

그런데 왜 내 입은 아직도 그 필터링이 안 될까.

나 자신에게 묻는다.


'왜 굳이 말을 해서 분위기를 깨고 마는 걸까.'

‘일 만들기 싫어하면서, 또 일을 만들었네…’
.
.
.


“나는 언제 철이 들까?”
피곤하다.

며칠이 지났다.

다음 주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한국에 살았으면 이런 고민 안 했을까.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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