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찾아왔다.‘인연이 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데뽀 정신이었다. 이곳은 베트남 달랏 (Dalat)의 선불교 수도원 (혹, 명상센터)이다. 한국말로 하면 죽림 선불교 수도원이다. 베트남 발음으로는 트룩람 (Truc Lam Zen Monastery)이지만, 죽림과 트룩람은 모두 동일한 한자를 기반으로 한다. 즉, 죽림과 트룩람은 ‘대나무 숲’이라는 의미다. 사원들 중, 죽림정사 (竹林精舎)란 이름을 종종 사용한다. 죽림정사의 원조는 인도 라즈기르 (Rajgir). 불교 최초의 사원이라 한다. 붓다가 가끔 라즈기르의 죽림정사에서 설법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수도원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마침 영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호주 베트남계 청년이었다. 내 나이또래로 보였다. 머리를 민 흔적이 보였다. 가족 종교는 가톨릭이라고 한다. 친척 중에 가톨릭 수녀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허나, 그는 불교에 심취해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그의 도움을 받아 간단한 등록 절차를 마치고,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나보다 먼저 온 영국 친구도 있었다. 그의 직업은 정원사 (gardener)라 하였다. 결국 그 친구와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진지하게 수행하러 오기보다는 문화적인 체험의 목적이 큰 것 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수행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그 영국인 친구는 특별히 주의를 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먹는 행위 조차도 수행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문화가 그에게는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몇 차례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삼가하도록 압박이 들어 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압박에 불만이 쌓이고 쌓였는지 모른다.
그곳은 선불교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 같이 느껴졌다. 달마 대사의 상이 곳곳에서 보였다. 또한, 한 팔로 합장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고 그 베트남계 호주인 친구가 이야기해 주었다. 그 친구도 한 팔로 합장을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한 팔로 합장하는 이유는, 달마대사의 직계제자인 혜가 (慧可)의 한쪽 팔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혜가는 달마대사 앞에서 그의 한쪽 팔을 잘라 보임으로 그의 결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투명하나, 여기서 중요한 요점은 스승 (한자 문화권에서는 사부가 더 친근한 표현)에 대한 서렌더 (surrender) 혹은 내맡김 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중요한 일부인 팔을 바쳐서라도 그의 결의를 다진 것이다. 이러한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곳은 또한 명상을 수련하기에도 매우 좋은 곳이었다. 달랏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휴양지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달랏 자체가 매우 공기가 좋은 곳임에도 그곳은 달랏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긴 하나, 수행을 하는 데 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명상 집중이 꽤 잘 되는 편이었다.
명상 외에도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쓰레기를 치우거나, 낙엽을 쓰는 일, 물건을 나르는 일, 잡초를 뽑는 일 등 주어진 일은 다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잡초 뽑는 일에 투입이 되었다. 허나, 모기떼가 엄청나게 많은 것이 아닌가. 그 영국인 정원사 친구는 이미 그곳에서 모기밥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나도 곧 그 자리에 투입이 되었지만, 모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였다. 고통 세례를 참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수행이 많이 부족함을 나타냈다. 감각적 고통에 아직도 반응을 한 것이었다. 그리곤 재빨리 방으로 돌아와 모기 기피제 (mosquito repellent)를 몸 이곳저곳에 발랐다. 그러곤 다시 투입하였다. 한 스님이 이를 눈치챘는지, 곧 나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다. 다음 장소는, 무거운 책들이 쌓여져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책 무더기들을 옮기는 일을 하였다. 그러곤, 스님들의 영정사진 (추정)과 달마의 사진을 옮기는 작업에도 투입이 되었다.
어느 날, 그 영국인 친구가 떠날 때가 되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매우 신나 있었다. 나, 스님, 그리고 그 베트남계 호주인 친구 이렇게 함께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스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였다. 나에게 물어 봤어도 되었을 텐데. 잠시 동안, 그 스님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곧 순수히 응해주셨다.
그 친구는 불상 앞에서 양손을 본인의 목 앞에 구부리고는, 토끼가 앞 발을 드는 듯한 깜찍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동시에, 한 쪽 발은 뒤로 들어 올리고, 혓바닥도 쭈욱 내민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취향이 어떤지는 이미 그와 한 방에 며칠 지내면서 잘 알 수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 스님은 그에게 공덕 지을 기회를 더 주셨다.
그렇게 나와 그 베트남계 호주 친구는 영국 정원사 친구의 공덕을 쌓는 일에 동참을 하였다.
꽃과 식물들을 나르는 일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스님은 나중에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 영국인 정원사 친구에게 정중한 감사의 표현을 잊지 않으셨다.
합장 _ () _ 까지 하시면서 말이다.
이것이 자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보통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 영국인 친구가 참 무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반면, 그의 행위는 어찌보면 매우 훌륭한 수행대상이 될 수도 있다. 불교에서도 붓다를 시해하려고 했던 데바닷타에 대한 다른 관점이 제기 되기도 한다. 그의 악역으로 인해서 붓다의 권위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또한 붓다를 공격하려고 하고 논쟁 대상으로 삼았던 많은 사람들 조차도 붓다의 지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다양성을 역할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몸이 유지 되기 위해선, 내부 장기인 심장, 폐, 신장, 간장 등의 각자의 역할이 필요 하듯, 이 세상도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해 나아가는 것이다. 모두 동일한 역할만 주어진다면 이 세상은 유지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곧 중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