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하게 돼는...
객년과는 다른 여름입니다.
하지 않는 걸 좋아하는 저는 안 하던 짓을 시작했습니다.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굳이 하는 쪽을 선택한 거죠.
짓지 못하는 것에 불안해하고 지은 것에 공포를 느끼는 서늘하고 재밌는 글짓기를 시작했습니다. 서늘하니 여름 나기론 그만이네요. 몇 편 짓지도 못했는데 계절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흠!
어쩌겠어요. 짓기로 한 거 애증과 애정으로 꾸준히 지어야죠.
그래서 여섯 번째 이야기는 "안 읽어주셔도 뭐... 할 수 없지(?)" 정도의 글을 지어보려고요.
매번 두려움에 떨면서 글 짓는 거, 어휴 고단해요.
여름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글을 짓기로 마음먹기 전까지도 계절에 상관없이 악착같이 시간을 내어 캠핑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고 글을 짓기 시작한 후엔 당분간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고요. 왜겠어요... 재주 없이 지은글에도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 마음이 고마우신 분들 때문이죠!
해튼, 저의 글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든, 일단 하지 않는다" 네, 저의 인생 원칙이랍니다.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이건 꼭 하고 싶은데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아양과 억지 썩인 자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응, 하지 마!"라고 자답하는 저를 이기고 시작하게 된 게 캠핑이었습니다.
지금은 글짓기가 되어버렸네요.
겨우 허락을 받은 캠핑이어서 나름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캠핑 역시 하지 않는 캠핑을 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다 보니 너무 늦게 안 걸 후회할 정도록 하지 않는 캠핑이 좋아졌죠. 이왕 자주 가는 캠핑인데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해 보라는 지인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럼 뭘 또 해야 하잖아'라는 생각에 진저리부터 치기도 했답니다.
운전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는 저는 캠핑 초기엔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한 곳을 찾았는데 지금은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좋은 곳이면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열차나 버스를 이용했고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기꺼이 걸었죠.
운전을 못하는 불편함은 오롯이 저의 못남이라 감내했고, 계절의 짓궂음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 순응했습니다. 고속버스보다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하고 상황에 따라선 택시도 타고 간혹 2시간에 한번 정도 있는 마을버스를 기다려 타기도 합니다.
감내하고 순응하는 여정은 조금 불편하고 살짝 고단하지만 여정 그 자체로 여행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아! 2시간 동안 뭐 했냐고요.? 2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해본 적 없어서 흔치 않은 기회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버스는 오더라고요. 좀 일찍 와서 2시간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가끔 같이 가는 캠핑메이트가 들으면 서운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 혼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이유요? 아, 이거 들으면 정말 서운해할 것 같은데...
첫째,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
둘째, 굳이 뭘 하거나 하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셋째, 저 둘만 하지 않아도 너무 편하다는 걸 알아버려서.
서운해하고 욕을 먹어도 별수 없습니다. 사실인걸요.
제 배낭은 날이 따뜻해지면 8kg를 넘기지 않고, 날이 추워지면 12kg를 넘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허기지고 추워서 힘들지 않을 정도의 짐이어야 하는데 안테나가 달려 있는 구형 라디오는 꼭, 반드시 무조건 챙깁니다. 그리고 책은 가급적 챙기려고 하는데 '없어도 뭐..' 정도겠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라디오 듣는 거 이거 하려고 캠핑을 갑니다.
저에겐 가볍고 하찮아 포기하기 힘든 행복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덤으로 따라오는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두둥!
따뜻한 계절에는 맥주 두 캔과 미니보틀 와인을 챙기고 추운 계절에는 미니보틀 사케와 150ml 플라스크에 위스키를 담아갑니다. 해지기 전엔 곡소개만 있는 음악 FM을 들으면서 (책이 있으면 보고 없으면 말고) 맥주나 사케를 홀짝입니다.
저녁 식사는 한 가지 재료로 요리 겸 안주를 만들어 먹습니다. 메인 재료는 버터와 후추, 소금이고 부재료는 소, 돼지, 닭, 새우, 관자 등 먹고 싶은 걸로 손질해서 준비해 갑니다. 양념이나 소스 대신 훈제된 파프리카 파우더, 시치미 정도고 셀러리와 당근을 간식 겸 후식으로 준비하는 정도입니다.
뭐, 이마저도 귀찮으면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샐러드, 초코칩 쿠키가 차선책이고요.
그렇게 속닥하게 저녁을 먹고 한 모금씩 홀짝이며 사연소개가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습니다. '음 그럴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에이 설마' 감탄도 하고 걱정도 하고 상담도 해주다 잠자리에 드는데..
지금부터 재밌습니다.
머리 누이면 바로 잠이 드는 타입이긴 하나 아무래도 한대서 자는 잠이라 제법 꿈을 많이 꾸게 됩니다. 고단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여정 속의 풍경과 스친 얼굴들, 사념(思念)과 사유(思惟), 읽은 책의 내용과 밤에 들은 사연이 뒤 썩여 상당히 복잡하고 이상한 이야기의 꿈을 꾸게 됩니다.
와~! 이거 제법 재밌습니다.
아시죠? '맥락 없는 꿈속 이야기에 죽어라 몰입하는 나의 모습!' 아, 아닌가요? 저만 그런가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꿈도 꿈 나름대로 재밌긴 한데요, 그 맥락 없는 꿈을 꾸고 난 뒤도 웃깁니다. 네, 좀 한심스럽고 하찮아서 피식 웃고 마는데 이걸 꿈을 꿀 때마다 반복한다는 거죠.
그 맥락 없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면 그 맥락 없는 이야기들을 갈무리해 두기 위해 노력해도, 바로 까먹는 게 일수고 꾸역꾸역 갈무리했다 한들 나중에 꺼내보면 '이걸 왜 굳이 적어두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건 공감하시죠.? 아니군요.
아! 이건 무조건 공감하실 것 같은데, '이건 기억해(적어) 뒀다가 나중에 이야기 쓸 때 써먹어야지' 하는 건 절대 기억 안 나는 건 공감하시죠? 아닌가 보네요.
그나저나, 가볍고 하찮은 이야기를 즐겁게도 써내려 왔습니다. 이렇게도 지어지는 게 글인가요? 음, 역시 저만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봅니다.
아무튼 오늘은 가볍고 하찮아 포기하기 힘든 (지극히 주관적인) 행복에 대해 글을 지었습니다.
맛은 모르겠네요. 흠!
일곱 번째 글을 쓰기 위해 그 하찮은 행복을 위한 나들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잠깐 설레었는데요.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왜냐고요? 이 가볍고 하찮은 이야기도 누군가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지금 캠핑 가면 조금 많이 무서운 꿈을 꿀 것 같습니다.
"아이야... 이렇게 날 지어놓고 잠이오니...."
epil.1
쓸 땐 편했는데, 편히 자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웠습니다.
epil.2
저의 속엣말이 들렸어요.
'저 좋으라고 짓는 글인가. 뻔뻔 스럽네..'
역시, 캠핑은 당분간 못갈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