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와 함께 1년을 보낸 우리 아이들은 이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외쳐댑니다.
-1학년이요!
왜 1학년일까요? 교실이나 복도 한 귀퉁이에 모여 올망졸망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여덟 살 아이들이 도대체 뭐가 무서울까요?
유치원을 벗어나 학교라는 정식 교육기관에 첫 발을 들인 1학년 아이들은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1학년 아이들의 세상은 단순합니다. '나'로 시작해 '나'로 끝이 납니다. 발달 단계 상 여덟 살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가족 외 다른 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며,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인식하고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갑니다.
1학년 아이들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습니다. 1학년 교실 앞 복도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앞문, 뒷문 할 것 없이 스프링 인형처럼 여기저기 튀어나옵니다. 앞을 보지 않는 아이들은 자신이 목표한 곳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갑니다.
그래서 이동수업을 위해 1학년 교실 앞을 지날 때면 항상 긴장감이 맴돌지요. 1학년은 우리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부지기수입니다.
1학년 교실 앞을 지나가던 6학년 아이가 튀어나온 1학년 아이를 미처 피하지 못합니다. 6학년 아이는 샌드백이 되어 1학년 아이를 몸으로 받아내지요. 6학년 아이도 깜짝 놀라지만, 감히 내가 가는 길에 사람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한 1학년 아이는 6학년 형보다 더 크게 놀라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습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의 행동은 아랑곳없이 울어댑니다. "저 형이 나 막았어!"라고 원망 섞인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요. 이 일을 당한 6학년 아이는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저 제 갈 길을 간 것뿐인데. 단지 잘못이 있다면 재빠르게 피하지 못했다는 걸까요?
6학년 아이 앞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자그마한 1학년 아이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정말 오해 사기 딱 좋은 장면입니다.
학기 초부터 아이들에게 누차 이야기 해 왔습니다. 조금 억울할 진 몰라도 너희가 우리 학교의 가장 맏형이니, 먼저 동생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너희도 6년 전에 그런 배려를 받아 지금 이렇게 성장했기에 이제는 너희가 돌려줘야 할 차례라고.
기억나지도 않는 6년 전 배려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양보가 억울하긴 하지만, 자신들보다 한참 작고 어린 동생들의 모습에 그냥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저희 반 아이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1학년이 학교에서 가장 무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1학년 교실 앞을 지나가야 할 때는 특히 더 조심하지요.
그런데 오늘 1학년 아이들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1학년 보다 더 어린 동생들이 있었네요.
병설 유치원 아이들이었습니다.
평상시 활동 시간과 활동 공간이 달라 거의 마주치는 경우가 없었는데, 오늘은 유치원 야외 활동이 있는 날이었나 봅니다. 급식실 앞으로 1학년보다 더 작은 유치원 아이들이 올망졸망 선생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의 반 토막도 안 되는 어린 아가들이 급식실로 향하는 형, 언니들을 빤히 쳐다봅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언니, 오빠들에게 안녕하고 인사하자."라고 손을 흔들어 보이지만 저희 반 아이들이 너무 건장해 보였을까요? 6학년 언니, 오빠들을 본 유치원 아가들의 얼굴에 긴장이 잔뜩 스며듭니다.
보다 못해 저도 나서 봅니다. 저희 반 아이들에게 "얘들아, 유치원 동생들에게 미소 지어줘야지."라고 이야기해 봅니다. 6학년 아이들도 유치원 아가들이 귀여워 보였는지, 다들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올려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역효과였을까요? 건장한 6학년의 미소를 본 유치원 아가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유치원 선생님 품으로 파고듭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 상황에 저희반 아이들이나 선생님 할 것 없이 결국 웃음을 터트립니다.
황당한 이 상황이 귀여워 오늘의 알림장은 미소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봐야겠습니다.
2025년 10월 21일 알림장
스물하나. 동생들에게 오해 사지 않도록 환하게 웃어주기
3개월만 지나면 이제 곧 중학교의 가장 어린 막냇동생이 되겠지만, 지금은 학교의 최고 맏형이지요. 맏형 노릇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어리광도 부리고 철없이 놀고 싶은데, 선생님은 계속 최고 학년이라 부담을 주지요.
맏형이기에 6학년만의 특별 행사를 누리고 특별 대우를 받는 만큼, 동생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거창한 배려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린 동생들을 조심하고, 혹여나 오해 사지 않도록 표정 관리도 해 주었으면 하는 것 정도지요.
-선생님, 그런데 저는 웃으면 더 무서워 보여요.
점심시간, 유치원 아이들과의 일이 내심 서운했던지 누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덜거립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직 동생들이 마음 읽기가 어려워 그러는 거니, 그럴 땐 슬쩍 고개를 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아이의 마음을 살며시 달래 봅니다.
말과 글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하는 건 상대의 행동이겠지요. 내가 건넨 수줍은 미소와 손짓 하나가 다른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줍니다. 따스하게 녹아내린 마음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되어주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이 작은 실천을 경험해 보면 좋겠습니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그 작은 행위가 내 주변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