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김밥은 단체 주문으로 새벽부터 정신이 없었다.
파란 하늘이 쨍한 맑은 가을의 토요일이었다.
좋은 날씨만큼 단체주문이 많았다.
그날은 “희망 아동 복지 센터” 소풍을 위한 주문에 여념이 없었다.
소이는 어느새 설거지, 홀 주문뿐 아니라
김밥 마는 기술도 익혔다.
“그것 봐. 내 뭐랬어. 손이 야무지다니깐.”
춘심이 김밥을 꼭꼭 말아 올리는 소이를 보며 주방에서 말했다.
정숙은 소이가 말아놓은 김밥을 기계에 썬 후, 포장하고 있었다.
나름 자동화라면 자동화였다.
김밥 써는 기계.
써는 것만 기계가 해 줘도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미소김밥의 또 다른 변화, 바로 키오스크 2대.
도저히 밀려드는 손님을 일일이 응대할 수 없어 지완은 대세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고령의 손님일 경우엔 정숙이나 지완, 소이가 도움을 주었다.
키오스크 때문에 김밥조차도 주문하지 못하는 손님이 없도록...
며칠 전 희망 아동 복지 센터의 센터장이 김밥집을 방문했었다.
<희망아동복지센터>의 장상복 센터장.
그는 일찌감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아동복지센터를 열었다.
인근 주택가의 아이들 중 맞벌이나 한부모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나 구청 복지센터로 아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이 센터는 아이들을 밤 10시까지 돌봐주었다.
하교 후 아이들이 센터에 오면
체육, 미술, 영어, 음악 등의 수업 후
저녁을 먹였다.
그리고 각자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며 부모가 오길 기다렸다가 아이들을 보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센터 소풍 가요. 김밥 100줄 포장 부탁드려요~”
“장터장님, 애들이 정말 좋아하겠네요.”
장터장. 사람들은 장센터장을 이렇게 불렀다.
그도 이 이름이 좋았다. 어린 시절 왁자지껄한 장터가 떠올랐다.
“우리 애들 중에 사랑랜드 안 가본 애들도 꽤 있더라고요.
TV에서 하도 많이 나오니까 당연히 갔을 줄 아는데
못 가본 애들이 부지기수예요.
학교나 우리 같은 센터에서 안 데리고 가면 다 크도록 못 가본다니까요.”
“그렇군요... 우리 후엔 아들 영태도 가죠?”
“그럼요, 당연하죠. 후엔 걱정 마세요. 영태 잘 데리고 다녀올게요.”
“장장님, 항상 고마워요. 우리 영태가 장장님 덕분에 공부 잘해요.”
후엔의 아들 영태는 여러모로 똑똑했다.
아마도 후엔을 닮은 듯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은 아니어도 일곱개 정도는 아는 아이였다.
장상복은 영태에게 대학생 자원봉사자의 과외를 붙여주었다.
날이 갈수록 영태는 수학과 과학에 소질을 보였다.
“후엔은 좋겠어요. 영태가 얼마나 똘똘한지.
이대로면 교육청 영재반도 써볼 수 있어요.”
후엔은 그보다 더 기쁜 말이 없었다.
영태는 자신의 아들 같지 않게 인물도 번듯하게
잘 생기고 공부도 잘했다.
무엇보다 <희망 아동 복지 센터>에 온 이후로 마음이 놓였다.
가게에서도 가까워 일이 끝난 후 데리고 집에 갔다.
“이게 다 정숙 사장 덕분이야.”
정숙은 후엔이 가게에서 집이 멀다는 걸 알고,
가게 가까운 곳에 집을 알아봐 주었다.
혼자 있는 영태를 안쓰러워한 정숙이
단골 장센터장을 소개해 주어
영태는 안전하게 센터에서 지낼 수 있었다.
“무슨요, 영태가 똘똘해서 그렇죠.
후엔은 좋겠어요. 공부 잘하고 착한 아들 있어서...”
후엔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보다 자식이 칭찬받을 때 부모는 더 기뻐하는 법이었다.
점심 장사가 끝나고 1시간의 브레이크 타임,
이제 곧 저녁 장사를 시작할 참이었다.
후엔은 한 아이가 가게 앞을 서성거리는 걸 보았다.
정숙과 지완은 일이 있어 집에 갔고, 소이와 춘심은 주방 안 간이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아이는 6살 정도 되어 보였다.
‘저렇게 어린아이가 혼자 이 시간에 돌아다니지?’
후엔은 문을 열고 밖을 나갔다.
“아가? 무슨 일 있니? 배고파?”
아이는 말없이 가게 앞 김밥, 떡볶이 그림을 바라보았다.
후엔은 자신의 이름으로 키오스크에서 김밥 2줄을 결재했다.
예전 혼자 집에 있던 영태가 생각났다.
생계를 위해 일하러 나간 후 혼자 집에 둔 영태.
영태는 혼자 밥통에서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어 먹곤 했다.
자신이 김치찌개를 끓여놓으면 차가운 찌개에 밥을 말아먹기도 했었다.
아이는 꼭 같은 시간에 왔다.
해가 지기 전, 저녁 장사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직전.
자세히 보니, 아이는 머리도 자주 감지 않은 듯했고,
옷도 늘상 같은 옷이였다.
약간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장, 그 아이 오늘도 왔다 갔어.
아무래도 하루 종일 밥을 굶는 것 같아. 아동학대 뭐 그런 거 아냐?”
정숙은 그날,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는 후엔을 찾는 듯했다.
정숙은 아이를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후엔 아줌마 찾니? 들어와. 오늘 후엔 아줌마는 쉬는 날이야.”
아이는 머뭇거렸다.
“괜찮아. 지금은 손님이 없어.”
아이는 김밥과 라면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아무래도 말을 안 해요. 이름도 몰라. 내가 외국사람이라 그런가? 사장이 한번 물어봐줘.’
후엔은 모처럼 휴가를 가며 그렇게 당부했었다.
“이름이 뭐야?”
“...........”
“괜찮아, 아줌마도 애를 셋이나 키웠어. 너보다 조금 나이 많은 늦둥이 누나가 있단다.”
“...........”
“누나가 요즘 사춘기인지, 엄청 멋을 부리네. 좋아하는 애가 생겼나 봐.”
“.........그 누나는 몇 살이에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누나는 12살이야. 아줌마가 늦게 낳았거든. 너는 몇 살이니?”
“....... 9살......”
‘9살?“
정숙은 너무 놀랐다. 아이는 기껏해야 6살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너... 학교 다니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정숙은 아이가 걱정됐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 주문한 김밥을 가지러 온 장센터장이 있었다.
”장터장님, 이 영상 좀 봐줘요.
얘 아무래도 학교 갈 나이가 넘었는데 학교도 안 가고,
하루 종일 굶는 것 같아요. “
장상복은 영상을 유심히 살폈다.
”아이가 진짜 9살이라고 했어요? 허참, 9살이라기엔 너무 왜소하네요. “
”그죠? 아이가 옷도 그렇고, 너무 마르고, 방임인 것 같죠? “
”에효. 그러게요. 이 아이 또 오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구청 사회복지사한테 연락해 놓을게요. 아마 경찰도 같이 와야 할 거예요. “
”신고하는 게 맞겠죠? 근데, 혹시라도 아이가 멀쩡한 거면... 그래서 괜히 멀쩡한데 신고했다고 하면 어쩌죠? “
”그럼 좋은 거죠, 뭐. 일단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배고파서 나오는 거니까, 의심은 해 봐야죠. 아동학대는 의심되면 신고부터 해야 돼요. “
”네..... “
- 8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