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마지막 인사

헬로, 앤디 2

by SY전서주
Pixabay Terri Cnudde



[“메이, 안녕하세요? 해봐. 안녕하세요?”]



소피가 침대에 누워있는 갓난아기를 향해 휴대폰을 내밀었다. 아기는 화면에 비춘 제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소피가 다정한 목소리로 메이의 이름을 불렀다. 휴대폰을 빼앗으려는 조그만 손을 피해, 소피가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할아버지, 메이 이쁘죠?”]

<[“너무 예쁘구나.”]>

[“메이, 우리 예쁜 메이, 언니는 너를 제일 많이 사랑해.”]



소피의 휴대폰 화면 속에서 앤디가 웃었다. 소피는 학교가 끝나면 메이를 보러 부리나케 집으로 왔다. 포근한 아기 냄새가 가득한 메이의 방에서 소피는 하루 종일 나갈 줄 몰랐다.



[“할아버지, 저는 메이랑 춤도 춰요. 보여드릴게요.”]

<[“응?”]>



소피가 휴대폰을 근처 책장에 잘 세워두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던 메이를 들어 예쁘게 안았다.



[“딴, 따라란, 따라란, 딴 딴.”]



소피는 메이를 안고, 한 손으론 메이의 조그만 손을 잡고 방안을 천천히 돌았다. 소피는 요즘 학교에서 왈츠를 배우는 중이었다. 까르르 메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앤디는 행복한 표정으로 화면 속 둘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메이의 방으로 한 여성이 들어왔다.



[“소피? 메이 지금 식사해요. 엄마 식사해요. 소피도 식사해요.”]

[“네, 알겠어요. 재클린.”]



소피가 재클린에게 메이를 건네주었다. 재클린은 메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소피가 휴대폰을 들어 앤디에게 말했다.



[“새로 온 가정부인데, 나이가 많아요. 영어를 잘하세요.”]

<[“그래?”]>

[“요리도 정말 잘하세요. 엄마가 살이 쪘어요.”]

<[“잘됐구나.”]>

[“재클린은 메이 밥을 먹여주면서 어쩔 땐 엄마도 먹여줘요.”]

<[“응?”]>

[“엄마가 메이를 안고 있느라 밥을 못 먹으면, 옆에서 빵이나 과일을 잘라서 입에 넣어줘요. 아기처럼요.”]

<[“음…”]>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앤디는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랑 재클린은 앉아서 매일 무슨 이야기를 해요. 둘이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아요.”]

<[“좋은 분이신가 보구나.”]>

[“재밌는 건, 그분한테 엄마가 물든다는 거예요.”]

<[“어떻게?”]>

[“엄마가 메이(May)를 가끔 메이(Mei)라고 불러요. 하하하.”]

<[“그게… 크게 다른 건가?”]>

[“아, 할아버지도 모르는구나. 어른들은 잘 모르나 봐요. 뭐, 괜찮아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아시아 국가에 사니까요. 여러 가지가 바뀔 수 있죠. 영어를 읽는 방식도요. 할아버지, 언제 오세요?”]

<[“다음 주에 간단다.”]>

[“빨리 오세요. 보고 싶어요.”]

<[“나도 보고 싶단다, 소피.”]>



앤디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축하하러 싱가포르에 올 예정이었다. 곧 있을 부산국제영화제에 특별 손님으로 초대되어 한국에도 갈 것이다. 소피가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식당에 가니 재클린이 메이를 안고 있고, 모린이 식사하고 있었다.



[“다들 할아버지에게 인사해요. 안녕.”]

[“안녕.”]



모두가 작은 화면을 향해 인사했다. 소피도 인사한 후 전화를 끊었다.



[“소피, 너도 먹겠니?”]

[“아니요. 저 배 안 고파요.”]



소피가 자기 방으로 갔다. 모린이 수프를 먹었다.



[“재클린, 너무 맛있어요.”]

[“고마워요. 잘했어요.”]

[“잘했어요.”]



모린이 미소 지었다. 재클린의 영어 실력은 처음 왔을 때보다 오히려 준 것 같았다. 하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모린은 그녀의 말을 거의 다 알아듣게 되었다. 재클린은 싱가포르에서 일하기엔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경력도 짧은 데다가 나이까지 많으니, 그녀를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린은 당장 사람이 급했기에, 우선 만나만 보자는 심정으로 그녀와 인터뷰했다. 재클린은 모린이 서류를 보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



[“…네, 이 정도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Sir.).”]

[“아, 하하. 저는 사장님이 아니라 여사님(Ma’am)이지만… 그게 뭐, 중요하진 않죠.”]



모린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재클린은 긴장한 것 같았다.



[“영어를 어디서 배우셨어요?”]

[“우리 딸이 가르쳐줬어요.”]

[“딸이요?”]



재클린이 주머니에서 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여러 번 접은 그 종이는 귀퉁이가 노랗게 닳아 있었다. 종이를 천천히 펴자 안에는 생각지 못한 그림들이 있었다. 그것은 프린트기로 인쇄한 재클린 가족의 사진이었다.



["큰 아들, 작은 아들, 그리고 막내딸이에요."]



사진 속 인물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재클린이 말했다. 모린은 재클린이 내민 사진에 말을 잃었다. 사실, 그것은 사진이라기보단 단순히 US Letter 용지 위에 여러 그림을 한꺼번에 인쇄한 한 장의 인쇄물이었다. 밖에서 찍은 것도 아니었다. 네 사람 뒤에는 파리의 에펠탑과 런던의 타워브리지와 하와이의 해변 사진이 어색하게 합성되어 있었다. 손때 묻은 종이 위 사진은 접힌 자국을 따라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모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재클린에겐 장성한 아들 둘이 있었다. 막내딸의 탄생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소녀는 유달리 똘똘했다. 공부에 욕심도 있었다. 학교를 가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집이 가난했다. 두 오빠는 이미 가정을 꾸렸다. 제 자식을 뒷전에 두고 동생을 공부시킬 만한 형편은 그들도 되지 못했다. 재클린은 시무룩한 딸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고민 끝에 그녀는 싱가포르로 일하러 가겠다고 했다. 오빠들은 크게 반대하진 않았다. 일터에서 돌아온 어느 날, 재클린은 딸에게 기숙학교 안내문을 주었다.



[“영어 시험만 통과하면 돼.”]

[“……”]

[“네가 가르쳐주면, 엄마는 당연히 통과할 거야.”]



재클린은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소녀가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오늘도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온 엄마의 등은 이미 땀에 푹 절어 있었다. 낡고 좁은 부엌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다. 소녀는 엄마가 준, 예쁜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가득한 학교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소녀는 주먹으로 눈가를 얼른 닦았다.


재클린의 딸은 재클린을 열심히 가르쳤다. 영어를 어디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을 텐데, 어쩌면 우리 딸은 이렇게 똑똑할까? 재클린은 감탄했다. 재클린이 영어 시험에 합격하고 돌아온 날, 둘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날 밤, 소녀는 깜깜한 방에서 잠든 엄마의 둥근 등을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재클린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모린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안색도 점점 창백해지는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모린의 이상한 반응에 재클린이 물었다.



["네? 아, 네. 괜찮아요."]



정신을 추스르고 모린이 대답했다. 하지만 모린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것은 재클린도 알 수 있었다.



["죄송해요, 부인..."]



재클린이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아, 아니에요! 아니..."]



모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 보다 더 붉게.



["예뻐요."]

["... 네?"]

["정말 예뻐요. 아름다운 가족이에요."]

["... 감사합니다."]



하지만 재클린의 표정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모린이 서둘러 말했다.



["내일부터 나와주세요."]

["... 정말요?"]

["네. 네. 그럼요. 아, 내일은 너무 빠른가요? 언제가...?"]

["내일 좋아요. 내일 좋아요."]

["네, 그럼 좋아요."]



재클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집에서 나갔다. 모린은 별말 없이 재클린을 배웅했지만 사실, 그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모린은 말과 행동을 조심하려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었다.


무례하지 않기 위해, 서두르거나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재클린의 딸을 더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도 힘들었다며 그 마음을 다 안다는 오만을 부리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딸을 두고 먼 곳까지 떠나와야 했던 재클린의 마음을 너무 깊게 상상하지 않기 위해, 어린 자신을 두고 떠나야 했던 엄마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감히 재클린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모린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녀가 집안을 보았다. 텅 빈 고급 아파트의 넓은 거실에 그녀는 혼자 서있었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모린은 그게 무엇이든 그녀가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이미 어릴 적에 죽음과 이별을 목도했고, 마음속 슬픔과 외로움을 혼자 다스릴 줄 알았다. 괴로워도 편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다이내믹한 인생을 살았다. 깊고 좁은 우물 안에서 손바닥만 한 하늘을 보며 평생을 사는 개구리 같은 인간들과 자신은 달랐다. 모린은 자신이 많은 것에 통달했고 몇 수 앞을 보는 시야를 가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못난 개구리들이 엄마와 아빠에 대해 어리석은 소리를 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도 그녀는 꿋꿋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절대 나를 이해할 수도, 나처럼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차갑게 비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당황스러울까? 왜 세상은 여전히 이렇게 내가 모르는 것들 투성일까?


모린이 거실에 있던 커다란 소파의 등받이를 만졌다. 옅은 하늘색과 베이지색의 고급 소파는 엄마가 좋아하던 가구 브랜드 제품이었다. 나는 왜 이 가구를 샀을까?



["......"]



나는 무슨 자격으로 여기에 있을까?


모린은 생각했다. 이제는 그만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고

자신이 특별히 행복하고

자신이 특별히 뛰어나고

자신이 특별히 부족하고

자신이 특별히 굳세고

자신이 특별히 나약하다는


그리고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지켜냈다는.


모린이 소파에 천천히 앉았다. 그녀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울고 있지는 않았다.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차가운 유리벽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맑고 따뜻한 물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지갯빛을 품은 아름다운 물이, 그녀의 우물 속으로 힘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Unsplash의 Meg MacDonald





[“예쁘죠? 손녀랍니다.”]

<[“예쁘네요.”]>



앤디는 런던 저택 중정에 있었다. 그는 혜진과 화상통화 중이었다. 혜진이 앤디가 보내준 사진을 보았다. 너무나도 조그맣고 어여쁜 아가였다.



[“손녀를 보러 싱가포르에 갑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부산에 갈 거예요.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어요.”]

<[“네.”]>



하지만 혜진은 그다지 신나 하는 것 같지 않았다.



[“… 혜진?”]

<[“…네?”]>

[“혜진, 제 말 들었어요?”]

<[“아, 네.”]>

[“저 부산에 가요.”]

<[“네. 좋네요.”]>

[“왜 가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일이 있으신가요?”]>



앤디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 영화제! 영화제에 오시는군요.”]>



화면 속 혜진은 웃기만 했다. 앤디는 저도 모르게 조금 심통이 났다.



<[“미안해요, 앤디. 아기 사진이 너무 예뻐서요. 사진 보느라 그랬어요.”]>

[“네…”]



사랑스러운 사진이었다. 당연히 정신을 빼앗길 만했다. 하지만 아기의 머리칼은 짙은 갈색이었다. 쉽게 눈에 띄어서 모자로 덮고, 때로는 도망치게 만들었던, 비열한 조롱의 이유 이자, 소중한 그녀의 흔적이었던, 그 색이 아니었다.



[“호주에도 제 아들이 살아요. 쌍둥이를 낳았어요. 저는 손주가 벌써 다섯이나 되었답니다.”]

<[“어머나, 멋지군요.”]>



앤디가 혜진을 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제 아내는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

[“그녀는 그녀를 닮은 예쁜 아이들이 이렇게 많아질 줄 알았을까요?”]

<[“알 거예요. 그녀가 보냈을 테니까요.”]>

[“하하…”]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다음에 만난다면 물어봐야겠어요.”]>



앤디가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영원히 30대이고, 나는 이렇게 변했죠. 다시 만난다면, 그녀가 놀라겠죠?”]

<[“그럼요.”]>

[“이렇게 형편 없어졌으니까요…”]

<[“하하, 반가워서 놀랄 거예요. 그리고, 앤디 코넬이 형편없다는 사람도 있나요? 앤디 코넬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예요.”]>



앤디가 풉 하고 웃었다.



[“부끄럽군요.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예요. 지금은…”]

<[“지금도 그래요. 정말 멋있어요.”]>

[“… 그래요?”]

<[“네. 지금도 반짝반짝 눈이 부셔요.”]>

[“하하하하.”]



앤디가 웃었다. 아주 살짝,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아내를 만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요?”]>

[“음… 사실, 너무 많아요. 그녀는 너무 일찍 가버렸어요. 해본 것보다 못해본 게 더 많아요. 할 이야기가 저는 30년 치 쌓여있어요. 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하고, 못해본 것도 다 해보려면 300년은 걸릴 거 같아요.”]



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진은 어때요? 나중에 천국에서 남편을 만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요?”]

<[“저는…어…”]>



말하려는데 갑자기 혜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혜진은 자신의 집 작은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혜진이 목소리를 차분히 가다듬었다.



[“저는 막 화를 내보고 싶어요.”]

<[“……”]>

["그가 미웠어요...."]



종훈이 아프던 그날들에, 사실 혜진은 너무 화가 나 있었다. 너를 믿었는데, 네가 전부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를 두고 가려고 하는지, 아픈 종훈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너무나 못된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채 몇 술 뜨지도 못한 병원 식판을 치울 때 혜진은, 어쩌면 진짜 나쁜 건 내가 아니라 도리어 너라고, 나와 승우만 남기고 가려는 네가 이기적인 거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날이 떠오르자 혜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종훈에게 미안하고 자신이 미웠다. 정말로, 자신이 견딜 수 없게 미웠다.



[“그는 많이 아팠고, 너무 고통스러워했어요. 저는 매일 사방에 빌기만 했어요. 제발 살려달라고 하늘에 빌고, 도와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빌고, 힘들다고 부모님께 빌고, 그 사람한테도 제발 견뎌달라고 빌었어요…”]



그리고 나중엔 그가 더 이상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고, 혜진은 빌었다. 내가 살려달라고 빌어서 저 사람이 저렇게 고통스러운 거라면,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제발, 내 소원을 들어주지 말라고, 혜진은 얼굴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화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혜진이 주먹을 꼭 쥐었다.



[“그렇게 다 지나고 보니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했더라고요.”]

<[“마지막 인사요?”]>

[“네. 마지막 인사요. 그 병 때문에, 병을 물리칠 생각만 하느라, 남편과 만나서 함께 살고 이렇게 헤어지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마치 곧 다가올 이별을 인정하는 것 같아,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오로지 우리의 모든 이야기와 그에 덧댄 투정과 농담이었다. 수준 낮은 김혜진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자상한 이종훈이 웃으며 어이없어하던, 그 실없는 대화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마지막 인사는 미리 해야 한다는 걸, 그러고 나서 배웠어요. 진짜 마지막일 땐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까요.”]



앤디는 말없이 혜진을 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은 언제였던가? 세상에, 한숨이 나올 정도로 오래전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그때 모든 게 끝난 것이었나? 그 뒤로 지금껏,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여태 의미 없는 에필로그만 반복해서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 그렇군요. 저도 그런 거 같아요.”]>



그렇다면 이번 마지막은 지난번과는 달라야 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적어도,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앤디는 작은 화면 속 혜진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어 대화와 영어 대화를 구분하기 위해 영어 대화는 [ ] 기호로 표시하겠습니다.

*통화음, 방송음 등의 기계에서 나오는 대화는 < > 기호로 표시하겠습니다.

keyword
이전 18화33.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