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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의 메시지

2부(진짜이민)

by 김미현

이 글에는 불안과 상처를 다루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읽는 분의 마음을 살피며 적었습니다.




아들의 수업 중일 시간이었다.


“엄마, 힘들어. 뛰어내리고 싶어.”


휴대폰 화면 위, 단 두 줄.

순간, 눈앞이 새하얘졌다.


손끝이 얼어붙었다.

답장을 쓰려다 지우고, 다시 쓰려다 멈췄다.




나는 곧바로 고객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머릿속은 단 하나의 질문뿐이었다.


‘지금 당장 학교로 달려가야 하나?

아니면 집으로 오라고 해야 하나?’




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엄마한테 얘기해 줘서 고마워.

지금 바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엄마한테 전화 바꿔줘.”


곧바로 답이 왔다.


“선생님들이 안 보여.”


바닥이 꺼졌다.

아이가 교실 안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독일 김나지움.

학부모가 교사에게 직접 전화할 수 없는 구조.

모든 건 앱으로만 이루어졌다.

메시지를 남겨도 답은 빠르면 내일,

늦으면 일주일이 지나야 왔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고학년은 아비투어(독일 대학입학시험)를 치르느라 수업이 멈췄고,

저학년은 교실에 그대로 붙잡혀 있었다.

선생님도 없는 채, 하루 종일 이어지는 ‘파티 같은 시간.’


아이는 그 시간을 도무지 견디지 못했다.

“시간 낭비야.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해?”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를 멈추고 노는 시간이 왜 힘들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공허한 시간이 아이의 마음을 가장 빠르게 갉아먹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았다.

팔과 손등, 손바닥 곳곳에

불펜 자국이 깊게 눌려 있었다.


낙서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잉크가 아니라 압력의 흔적이었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피부 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나는 즉시 K에게 말했다.

“This is serious. it’s a warning sign. We have to tell the teacher.”

(이건 심각해. 위험 신호야. 선생님께 알려야 해.)


K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No… here in Germany, you don’t show this.

People may see it as weakness. It could hurt him more.”

(아니… 여기선 이런 걸 드러내지 않아.

약점으로 보일 수 있고,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어.)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That sounds cold.”

(차갑게 들려.)


말이 끝나자 공기가 얼어붙었다.

‘Cold’는 내겐 감정의 온도였지만,

K에게는 인격의 평가로 들렸다.

그 작은 어휘 하나가, 우리 사이의 공기를 순식간에 식혀버렸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려움 속에서 맞섰다.

나는 아이의 ‘지금’을 지켜야 했고,

K는 아이의 ‘미래’를 두려워했다.




그날,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문이 열렸다.

아이가 처음으로 죽고 싶다고 말한 날이었다.


그러나 해결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막아섰고, 두려움은 더 짙어졌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이 싸움은 이제 집 안에서 끝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상담사다.

수많은 내담자를 만나왔고,

무너져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왔다.


그러나 독일의 제도 속에서

나의 자격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건 의료 체계 안의 상담사였다.

그 차이가 내 손을 묶어버렸다.


결국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전화선은

내 손이 아닌 K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상담사이자 엄마로서

가장 무력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독일이민 #엄마의 기록 #교육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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