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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아저씨의 별명 변천사

by 김미현


괴산아저씨는 ‘햇살이’였다.

사람 좋은 웃음이 정말 햇살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토토로’가 되었다.

토토로의 웃는 얼굴을 꼭 닮았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내 휴대폰 속 그의 이름은 나름 준수한 별명이었다.

하지만 ‘토토로’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해 나갔고,

마침내 ‘망언이’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아, 내 마 죽겠다. 이놈의 암컷들이 내한테 반해서 내만 따라다닌데이. 내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가! 니 불안해서 어데 잠이 오겠나?”


그를 따라다니는 ‘암컷’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모기들이었다.


그는 거울을 보며 매일같이 말했다.

“캬, 진짜 잘생깄네. 돌아뿌리겠다. 돌아뿌리겠어.”


“와, 니 요즘 어디 다니나? 자신감 학원 다니나? 병점 자신감 학원이가? 니 수석이겠네. 장학금 받겠어.”

병점 자신감 학원이라니! 그런 학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날 이후 그의 별명은 ‘망언이’로 굳어졌다.


다음은 ‘아몸커’.

‘아, 몸이 진짜 크다’의 줄임말이었다.


남동생이 그 별명을 듣고 배꼽을 잡았다.

아저씨는 푸념했다.

“아몸커가 뭐꼬. 아몸커가.”


그건 아들이 말을 막 배우던 시절의 별명이었다.


그 뒤로 그는 ‘이토르’가 되었다.

어벤저스의 ‘토르’처럼 몸은 크지만, 뭐만 만지면 부숴먹는 능력 덕분이었다.

이씨 성을 붙여 ‘이토르’.


그리고 ‘시크릿 쥬쥬’.

주식을 시작한 아저씨가 남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의 비밀을 지켜주느라 그렇게 되었다.


바빠진 나를 대신해 요리를 시작한 아저씨는 다시 ‘콩쥐 아재’가 되었다.

“니 그 별명으로 나를 가두려고 하는 거제? 콩쥐처럼 부려 묵을라고!”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며 김치콩나물국을 끓였다.


그러다 마침내 그의 별명은 ‘천왕성’이 되었다.

아무리 봐도 지구인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이 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발상과 자유로움을 가진 인물이다.

언제 자기 별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자꾸 지구가 자기 별이라 우기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하루빨리 깨닫길 바랄 뿐이다.


아저씨는 오늘도 지구에 산다.

덕분에 내 하루도 조금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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