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 멘 중년에게 말을 걸면

by 김미현


어디를 가나 나는 요즘 말이 별로 없다.

상상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멍순이처럼 보이기 일쑤다.


“뭐 해? 무슨 생각해? ”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서부터 생긴 증상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자꾸 맛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혼자 머릿속에서 이 말을 갖다 붙여봤다가 저 말로 대신 해봤다가.

말이 되는지 생각해 봤다가 난리 난리 아주 그런 난리가 따로 없다.

아마도 얼마 안 된 브런치 작가의 초기증상이 아닐까 싶다. 할 건 진짜 다 하고 앉았다. 톡톡히 그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창 밖을 보며 떠오르는 것들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머릿속의 폭죽들이 이제 막 클라이맥스로 달려가 팡팡 터져주려고 하는 찰나에 한 남자가 내 시야를 딱 가렸다.

웬 빡빡이 아저씨가 백팩을 창가 테이블에 탁 올린 거다. 그러더니 태블릿을 꺼내어 펼쳤다.


‘에잇. 와 하필 저기 앉노.’


하지만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려 최대한 노력했다.

그래. 오늘 내 레이다망에 저 아저씨가 걸렸네.

생각을 금세 바꿔 관찰자 모드에 시동을 걸었다. 관음증이 따로 없다.


어랏. 아저씨의 태블릿 커버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석 커버인 듯 보였는데 태블릿이 공중으로 붕 띄워지는 게 아닌가. 오메. 저거 저거 딱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그 형태인데 싶었다.


매일 스마트폰 메모장에만 글을 끄적이던 나는 왠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노트북이나 태블릿 키보드에 글을 쓰는 다른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뭔가 폼나는 것 하나 정도는 갖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그 아저씨의 그것은 나의 호기심에 불을 활활 지폈다.

당장 사지도 않을 거면서 어디서 샀는지 알고 싶은 나의 희한한 심리.


그 사이에 그가 그 태블릿을 예쁘게 펼쳐 놓고 주문을 하러 떠났다.

아까부터 옆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던 K에게 속삭였다.


“저거 저래 놓고 가도 되는 기가? 누가 훔쳐 가면 우짜노? 독일에서는 절대로 뭐 놔두고 어디 가지 말라며. 다 훔치간다고 니가 그랬잖아. “


K와 나는 영어로 소통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의 언어로 표현하겠다.


“여기는 괜찮아여.”

“엥? 뭔 소리고?”

“지금은 사람도 안 많고, 여 분위기상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 거라. “

“아. 맞나? 거 참 희한하네. 그걸 우째 딱 안단말이고. 훔치갈지 안훔치갈지. 근데 저거 진짜 내가 딱 찾던 건데… 혹시 어디서 샀냐고 물어봐도 되나? “


잠시 망설이더니 K가 그에게 다가가 드디어 물었다. 낯선 남자가 나를 흘깃 한번 보더니 미소를 띠었다.

그러더니 그 태블릿을 들고 내 자리로 걸어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동방예의지국 나라에서 온 내가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지, 궁금한 시람이 찾아가야 그게 맞지라고 생각하며 슬금 그에게로 다가갔다.


웃으며 인사하니 이런.

내 독일어 실력을 눈치라도 챘던 건지 바로 영어모드로 바꿔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어데서 샀는지만 알리 주면 되는데. 우짜노. 이거.‘


하지만 이미 아무도 그를 멈출 수 없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은테 안경을 쓴 그 푸른 눈의 노신사는 버릇처럼 손등으로 안경테를 추켜 올리더니, 본인이 어떻게 그 태블릿을 사용하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설명은 멈출 줄 몰랐고, 나는 어느새 그의 이메일함과 문서 목록까지 보게 됐다. 게다가 그의 가족의 역사 중 일부까지도 알게 되었을 즈음, 나에게 태블릿을 쓱 내밀며 그의 반짝이는 안경태는 다시 한번 고쳐 올려졌다.


“니 함 치볼래?”

”니 함 들어볼래? “


타자도 쳐보게 해 주시고, 내가 들기에 무거운지도 확인하게 해 주시다니.

이 아저씨가 만약 그걸 팔았다면 나는 완전 백 퍼센트 샀을 거다.

스티븐 잡스 보고 있나. 애플은 그에게 감사 쿠폰이라도 보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것을 떠나서라도 낯선 이의 질문 하나에 이리도 진심으로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대답하는 문화가 독일의 모습 중 하나인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그 노신사와 인사를 나누고 커피숍을 나왔다.


K가 차로 향하는 길에 무심히 말했다.

”커피숍에서 백팩 메고 안경 쓴 중년을 만나잖아. 그러믄 그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고학력자일 가능성이 높데이.“

”맞나? 진짜 신기하네.”


생각지 못한 친절을 받을 때 그 하루는 그 한 사람 덕분에 반짝인다. 그런 것이 그 도시의 이미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 같다.



<주의 사항>

시간이 없을 시에 함부로 안경 쓴 백팩을 멘 중년 혹은 노년의 독일인에게 말을 걸면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

집에 못 가는 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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