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부정과 왜곡
우치하 오비토는 밝고 따뜻한 소년이었다.
동료들을 지키고,
언젠가 호카게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건 이후 그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린의 죽음을 목격한 뒤,
오비토는 절망에 잠식되어 세계를 부정하고
타락의 길을 걷는다.
왜 그는 그렇게까지
절망 속에서 타락할 수밖에 없었을까?
오비토의 전환점은 린의 죽음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눈앞에서 잃었고,
그것이 자신의 무력감 때문이라고 믿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외상적 상실(traumatic loss)이다.
충격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
인간은 자기 존재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그는 상실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 자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오비토는 상실을 직면하는 대신, 현실을 부정했다.
그는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보고 싶었던 환상 속 세계를 만들려 했다.
이는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의 대표적 사례다.
개인의 고통을
세계 전체의 문제로 확장해 버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마주하는 대신,
세계를 탓함으로써 고통을 피하려 했다.
오비토의 선택은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회피적 방어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직접 느끼는 대신,
외부 현실을 바꾸려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파괴적이었다.
그는 권력과 지배를 통해 상실을 덮으려 했지만,
그 어떤 힘도 린의 부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의 집착은 결국 파괴와 타락으로 이어졌다.
오비토와 나루토는 비슷한 상처를 공유했다.
둘 다 부모 없이 자라났고,
외로움과 상실을 경험했다.
나루토는 그 고통을 관계 속에서 회복했지만,
오비토는 고통을 회피하고 왜곡된 신념에 몰두했다.
같은 상처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때때로 오비토처럼
절망 속에서 세상을 탓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상실이나 실패 앞에서
"모두 잘못됐다"라고 외치며
현실을 거부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그 길은 치유가 아니다.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진다.
현실을 부정하고 환상에 집착하는 선택은
잠시 버팀목이 될 수 있지만,
결국 더 큰 파괴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상실의 고통을 인정하고 애도하는 용기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타인과 나누며,
상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