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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아빠 애인이랑 잘 지내도 될까?

아이들 이야기 1

by 핑크레몬

















이런 질문은 마음이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 들었으면 좋겠지만 갑자기 훅 들어온다는 표현처럼 정말 훅 들어왔습니다.

이런 질문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을 못해봤었습니다.

전남편에게 애인이 생겼다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상상은 못 해봤거든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할리우드 스타일을 강요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순간 고민을 했지만 일단 아이 앞에서 멋있어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싫었습니다. 정말 싫었습니다.

속으로 "싫어. 싫어. 싫다고."를 한 500번쯤 외친 것 같습니다.


남편의 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와 친하게 지내려는 그 시도 자체가 괘씸했습니다.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일단 허락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대답한 후에 한참을 고민해 봤습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고.


나는 정말이지 쿨한 사람이 못되나 봅니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남편과 전남편 파트너, 우리 아이들 다 같이 식사하는 장면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혼을 했다면 전남편이 평생 혼자 살 리도 없고 어쩌면 나 또한 애인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런 일은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다만 내가 미리 생각을 못 한 것일 뿐.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 짐작을 못 할 뿐. 분명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받아들여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진짜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먼저 물어봐 준 아이가 고마웠습니다.

나한테 말 안 하고 같이 만나도 되고 잘 지내도 사실 내가 다 알 수는 없을 텐데 말이죠.


엄마의 마음까지 배려해 준 아이가 고마웠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족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렇게 엄마한테 물어보기까지 아이 나름대로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요?

엄마가 슬플까 봐 고민이 됐나 봅니다.

어떻게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을 예상하고 물어봐 준 걸까요?

아이는 성숙한데 오히려 저는 성숙하지 못했던 겁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이가 내 마음을 그렇게까지 헤아려주는데 그럼 나도 아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겠지요.

아무리 내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말이죠.

어차피 만날 건데 그렇다면 만나러 가는 그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엄마여야 했습니다.


못 만나게 하는 건 정말 유치한 일인건 확실했습니다.

전남편에게도 아주 찌질하게 보일 것 같았습니다.

이혼을 하고 나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신경전 같은 걸 하게 되곤 합니다.

이왕 할 거면 진짜 쿨하게 해서 멋있게 하자 싶었습니다.


전남편의 애인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는데 그렇다면 아이를 만나면 얼마나 잘하고 싶어 할까요?

얼마나 잘 지내고 싶어 할까요?



우리 아이들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잘해주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나이이니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대해준다면 더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엄마들의 약점. 아이를 진정으로 대해준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요?

아이가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텐데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나 아빠 애인이랑 잘 지내도 될까?

물론이지, 엄마는 네가 여러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도 그중 한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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