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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 한번 더 용서하라

두 번째 결혼이야기 5

by 핑크레몬











상간녀의 임신으로 더 이상 바닥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순간에 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밑바닥은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나는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전남편은 말도 안 되게 한번 더 용서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사람이 가정을 지키고 싶구나.

내가 외도를 허락했을 때처럼 간절하구나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나이기에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바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가정을 지키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이해를 해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래서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그 사람이 가엾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 한번 더 용서하라.

그래야 후회가 없으리라.

정말 사랑했었다면 한번 더 용서하라.

진정으로 사랑한 시간이 있었다면…..


훗날 이날을 떠올렸을 때 그래도 그때 용서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면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똑같은 일이 또 반복이 된다면 그땐 누구 잘못인지, 누가 나쁜지 명확히 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말한 것처럼 “우리 착한 아들이 왜 그랬을까?”와 같은 말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내가 나한테 떳떳할 거 같았습니다.

그래야 미련이라는 게 눈곱만큼도 안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이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 동안 자신이 가정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판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 이혼을 하나 6개월 뒤에 이혼을 하나 이혼은 마찬가지니까요.

그래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싶었습니다.

그 6개월만큼은 더 이상 그 사람을 의심하지도 말고, 위치추적, 핸드폰 검사 따위의 추궁은 하나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온전히 그를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왕 용서하기로 했다면….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6개월이 가기도 전에, 5개월의 끝자락에, 일은 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그전만큼 슬프지 않았습니다.

몇 번 경험하고 나니 내성이 생긴 걸까요? 아니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였을까요?

하지만 나 자신에게 칭찬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을 때 한번 더 용서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없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혼은 이럴 때 하는 게 맞는 거였습니다.

2번이나 이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럴 땐 하는 거라고 여겨졌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내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내 발로, 내 두 발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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