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떤 계절을 닮았을까.
나는 아마도 통영의 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다가와 서서히 마음을 적시는 계절. 통영의 풍경 속에서 나는 잊고 지냈던 감정을 다시 배운다. 재촉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감정.
이순신공원 언덕에 앉아 바라본 노을은 유난히 느렸다. 해가 지는 일은 어디서든 똑같이 일어나지만, 이곳에서는 특별히 다른 빛을 남겼다. 붉은빛이 바다에 번지고, 물결은 그 빛을 받아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 순간, 전하고 싶었으나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보냈던 메시지, 끝내 지우지 못한 이름, 그리고 오래 삼킨 침묵들까지. 통영의 노을은 그것들을 다시 불러내어 조용히 내 앞에 놓아주었다.
사랑은 꼭 말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통영의 바닷길을 걸으며 떠올렸다. 때로는 침묵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흐른다. 말없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같은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영의 바다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삼칭이길을 걸을 때면, 그 길 자체가 사랑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햇살은 담장 사이로 고요히 스며든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괜찮고, 그저 걷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길.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함께 걷는 발걸음이 서로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예전의 나는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통영의 골목과 바다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랑이란 어쩌면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기억해주는 일, 햇살이 닿은 어깨를 조용히 바라봐주는 일, 그 사소한 순간들을 함께 품는 일이라는 것을.
통영의 봄바람은 따뜻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에서는 누구나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어 꽃잎이 흩날리는 길 위에 서 있었다. 꽃은 결국 흩어지고 말겠지만, 그 짧은 찰나가 주는 울림은 오래 남는다. 사랑도 그렇다.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 해도, 그 순간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빛과 모양으로 여전히 남아,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통영은 나에게 사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선물했다.
내가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마음이다. 바다 앞에 앉아 있으면 알 수 있다. 내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자리가 남아 있고, 그 자리는 누군가를 향해 언제든 열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통영을 걷는 일은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잊었던 감정을 다시 꺼내는 일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는 잊기 쉬운 것들을, 이곳에서는 다시 배운다. 사랑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함께 고요히 바라보는 풍경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고, 골목마다 다정한 시간이 스며 있으며, 노을은 조용히 마음을 물들인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사랑을 믿고 싶어졌다.
이 글은 제가 오래도록 기록해 온 이야기의 한 조각입니다.
그 흔적들을 모아 《통영,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는 책으로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며 제가 받은 위로와 영감은 통영이 제게 건네준 선물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통영의 풍경과 감정을 더 깊이 느끼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