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계절을 건너온다

16. 겨울을 맞이하며

by 구혜온

지난밤, 힘들었던 마음들을 글로 옮겨 적으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고통을 덜어낸 탓일까.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푹 자고 일어났다. 몸도 마음도 가벼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다. 박선옥 씨가 정성스레 차린 아침밥상도 오늘따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연장이지만, 그 속에서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 아침행복의 이유는 '맛있는 아침밥'이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을 매일 같이 먹는 건 행복한 일임이 틀림없다. 물론 돈은 내고 있지만 그건 번외다. 언젠가는 집을 다시 구해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다시 오롯이 혼자가 되어 산다면, 이렇게 잘 차려먹고살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식사 후 일찌감치 일을 시작했다. 결혼 전 수년 간 했던 일이라 그런지 금세 손에 익어 이제는 어렵지 않게 해 나간다. 물론 헷갈릴 때도 있고, 20대 시절과는 다르게 모니터를 오래 보고 있노라면 눈이 금방 피곤해지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내 손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후배와 통화를 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조율하고 작업을 완성한 원고는 다시 출판사로 넘겼다. 천천히 해도 됐지만, 오후에는 혼자 시장에 가보고 싶었다. 태석과 함께 시장에 갔던 어제, 깜빡하고 사지 못한 물건이 있었다. 한글 쓰기에 재미를 붙인 윤호에게 예쁜 공책과 연필을 사주고 싶었다. 물론 윤호에겐 이미 많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엄마로서 꼭 사주고 싶었다.


점심 무렵, 혼자 차를 끌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골이라 길이 복잡하지 않아 어제와 마찬가지로 금방 도착했다. 태석이 알려준 문구점으로 곧바로 가서 윤호가 좋아할 만한 학용품들을 골라 담았다. 처음엔 공책과 연필 정도만 생각했는데, 눈길이 닿는 물건마다 사주고 싶은 생각에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았다. 아기자기한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예고 없이 아픈 기억이 찾아왔다. 왜였을까. 윤호에게 줄 물건들을 고르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학교에서 제법 공부 잘하는 학생이자, 새 학년이 되면 반장을 도맡아 하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남들은 내 부모에게 이런 딸이 있어 부럽다고 했지만, 우리 집 상황은 달랐다. 할머니도 모자라 언제부턴가는 엄마까지도 계집애가 쓸데없이 저런 거나 해서 동생 기만 죽인다고 구박을 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놀기 좋아하는 동생 탓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동생이 공부를 안 하는 것도 다 나 때문이라는 억지로 내 기를 죽이려고 했다.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애틋한 게 내 자식인데, 엄마에게 자식은 내가 아닌 남동생뿐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씁쓸함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따끔거렸다.


윤호는 유치원 가방에 귀여운 키링을 달고 다녔다. 함께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키링을 발견하면, 가방에 달고 다닌다고 항상 사달라고 했었다. 그랬던 윤호가 지금도 여전히 가방에 키링을 여러 개씩 달고 다니는지, 아빠가 잘해주긴 하겠지만 괜히 마음이 쓰였다. 다시 우울에 빠지기 전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해 나가는 걸 멈췄다. 속이 허했다. 마음까지 허기가 지는 오후.


오늘은 장이 서지 않는 날이라 어제 본 순댓국집 천막은 보이지 않았다. 시장을 돌다 국숫집을 발견했다. 결혼 전엔 이런 곳을 다니며 먹는 걸 참 좋아했는데. 그땐 혼자서도 잘 다녔는데, 어째서 나는 결혼 후 남편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가지 않은 걸까. 아마도 전남편과 사이가 틀어진 후 심적으로 더 위축이 되어 있던 것 같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뭐라고... 혼자 와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건데... 지난날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국수가 나올 동안 식당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부동산에서 온 전화였다.


"아, 여기 부동산인데요. 그동안 몇 분이 집 보고 가셨거든요. 엊그제 보고 가신 분들이 연락이 오셨어요. 집 상태도 좋고, 집값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계약하신다고 하네요."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잘 됐네요. 일정을 맞춰야 하는 거죠?"

"아무래도 그분들이 부부가 둘 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주말에 가능하다고 하시네요."

"그럼, 제가 이번 주 토요일에 맞춰서 가면 될까요?"

"네, 시간은 주말 두시 정도가 편하다고 했었거든요, 그럼 두시 괜찮으세요?"

"네, 그럼 이번 주 토요일 두시에 부동산으로 갈게요. 제가 지금 밖이라 메모가 어려워서요. 제가 부동산에 갈 때 가져가야 할 필요한 것들이랑 부동산 주소 문자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통화 끝나고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토요일에 뵐게요."


사실, 집이 팔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다. 경기도 어렵고 신축 아파트도 아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집이 나갔다고 하니 후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내가 행복을 꿈꾸며 입주했던 곳. 이제 내 집이 아닌 곳.

마침 이번 주말은 아이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나는 집이 팔렸다는 사실보다 윤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했다. 윤호에게 줄 선물이 이거면 되려나...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국수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자 나는 서둘러 식사를 했다. 윤호를 위해 더 살 것은 없는지 시장을 좀 더 둘러보기 위해서다.


윤호가 부족하게 지내고 있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죄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골에 있는 시장이라 그런지 딱히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아쉬움을 품은 채 문구점에서 산 윤호의 물건들만을 차에 싣고 솔향집에 돌아왔다.


윤호에게 줄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쇼핑백에 담았다. 윤호가 좋아하는 공룡이 그려진 쇼핑백이 마침 문구점에 있어서 함께 사 왔다. 좋아할 아이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정리를 끝낸 후 커피 생각이 나서 태석의 카페로 향했다. 요즘에는 손님이 제법 있다. 이 시골에 관광객이 평일에도 줄곧 오지는 않을 테고, 멀리서 봐도 동네 사람들이다. 또 이상한 소문이 나는 건 아닌가 싶어 발길을 돌릴까 하다가 나만 떳떳하면 된다는 태석의 말에 당당히 카페로 들어갔다.


"오늘은 늦게 나오셨네요."

"아, 혼자 시장에 다녀왔어요. 어제 깜빡하고 안 사 온 게 있어서요."

"한 번 가본 곳인데 혼자서 잘 찾아가셨네요."

"길이 서울처럼 복잡하지 않으니 한 번 밖에 안 갔어도 외우게 되더라고요. 참, 그때 서울집 내놨다고 했잖아요. 사겠다는 사람들이 벌써 나타났대요. 계약하겠다고 해서 주말에 다녀오려고요."

"정말 괜찮겠어요?"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한데, 그 넓은 데서 혼자 지내기도 힘들고, 여기 계속 있다 보니 좋은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회복되는 것 같고. 또 제 일이 이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으니까요."

"선영 씨가 하는 일의 최고 장점이네요."

"그러게요. 출판사 정직원으로 들어가면 더 많이 벌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서울집 정리되고 하면 저도 솔향집보다는 여기 근처에 집을 구해서 사는 게 맞겠죠. 언제까지 하숙생처럼 지낼 수는 없으니까요."

"하하. 하숙생. 그러네요. 민박집이지만 밥까지 나오니 하숙집이나 다름없네요. 저는 글쎄요. 앞으로도 솔향집에서 지내지 않을까 싶어요. 과거의 상처를 안고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게 집은 아픈 기억만 있는 곳이라... 내 집을 또 따로 얻어 산다면 그 공허함과, 그때의 추억들이 결국 또 아픔으로 저를 힘들게 할 것 같아서 아직은 용기가 안 생기네요. 그리고 박선옥 씨 손맛이 좋잖아요. 혼자 살면 누가 그렇게 차려 줘요."

"그러게요. 그게 제일 아쉽긴 해요. 솔향집에서 나가면 박선옥 씨가 차려주는 밥상이 그리울 것 같긴 해요."


우리는 웃으며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일은 진작에 다 해 두었고, 어젯밤 쓰던 이야기를 이어서 써 내려가기 위해서다.


아까 불현듯 떠오른 나의 초등학생 시절과 별다를 것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 동생은 가면 갈수록 더 말썽을 피웠다. 공부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고, 툭하면 학교를 빼먹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이 집 장손이라며, 기 죽이면 안 된다고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빠가 한 번씩 다그치려고 하면 할머니는 동생 앞에 서서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 큰 사고 치는 것도 아닌데 애를 왜 혼내냐고 역정을 내셨다. 아빠는 할머니 말이라면 거스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아침밥을 안 먹고 가는 건 신경도 안 쓰면서 동생이 먹기 싫다고 하면 딱 한 입만 먹고 가라며, 어린 아기 달래듯이 꼭 뭐라도 먹여서 보내던 가족들. 그 설움이 익숙해지니 나중엔 무뎌지기까지 했다.


수능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하필 그날이 동생 생일날이었다. 엄마는 시험을 보러 가는 딸에게 미역국을 차려줬다. 나는 미신 따위 믿지 않지만 그 설움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그날은 도시락에도 미역국이 들어 있었다. 꼭 내가 시험을 망치길 바라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보란 듯이 정신 차리고 시험에 임했고, 수능 점수도 제법 잘 나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대학은 보내줬다. 단, 조건이 있었다. 첫 등록금만 내준다는 조건. 그 이후로는 내가 장학금을 받든, 아르바이트를 해서든 나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다. 기숙사비도 몇 달은 내주지만, 그 이후에는 그 마저도 내 힘으로 해결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버려진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익숙한 삶이라 난 또 그 설움의 나날을 살아냈다. 동기들이 놀러 다닐 때 나는 이 악물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당, 카페, 과외...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게 좋았다. 등록금을 내고 기숙사비를 내며, 또 그 돈으로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지만, 나는 최대한 아끼고 아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였지만 화장품이나 옷 사입을 돈까지 아끼며 악착같이 살았다. 아예 안 쓰고 산 건 아니지만 정말 필요한 것들만 사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대학 졸업 때 빗이 잔뜩이라던데, 나는 그런 습관 덕분에 오히려 통장에 제법 돈이 쌓여있었다.


명절을 제외한 날에는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다. 찾는 사람도, 보고 싶다는 사람도 없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살아온 날 보고 독하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이건 독한 게 아니라 나로서는 살아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대학생 시절까지 나는 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원고 교정만 하는 게 책도 쓰기로 하신 거예요?"

정적을 깨는 태석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요. 일은 아까 오전에 해서 넘겼어요. 책은 아니고, 그냥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글로 정리하는 중이에요.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혼자 상처를 극복해 보려는 또 하나의 방법이죠 뭐."

"그래도 대단하네요. 쉽지 않을 텐데. 커피 내리면서 보니 거침없이 써 내려가던데요."

"그랬나요, 기억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아무리 이쪽 일을 하는 사람이어도 쉽지가 않죠, 이렇게 술술 써내려 가는 게."

"출판 쪽을 잘 아시는 거예요? 지난번에도 여쭤보려다 말았아요."

"불쑥불쑥 티가 났나 보네요. 십 년도 더 전에 그만뒀는데."

"정말 출판계에서 일하셨던 거예요?"

"그랬죠. 오래전에요. 사고를 겪기 전까지. 편집장이었어요. 제 전공도 원래 그쪽인데, 지금은 이 커피 내리는 게 전공이 됐네요."


태석은 웃으며 말했지만 눈빛은 슬픔을 품고 있었다.


"왜 얘기 안 하셨어요, 출판사에서 일하셨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저는 말은 안 했지만 한 번씩 티는 냈는데요. 눈치 못 챈 건 선영 씨죠."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나 봐요. 동지를 만난 기분이네요."

"일을 놓은 지 하도 오래돼서 이제 기억도 안 날 것 같아요. 다시 하라고 해도 저는 지금 이 일이 더 적성에 맞네요."


손님들이 들어오며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다시 끊겼다. 그는 아내가 될 사람과 뱃속의 아이를 사고로 잃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그 상처로 삶의 끝자락까지 갔다가 이곳에 와 서서히 회복해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행복을 꿈꾸던 시절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을 했던 사람이다. 상처의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는 비슷한 구석이 제법 있었다. 내 상처가 그에게 투영되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도 나를 보며 자신의 상처를 투영해 보았을까.


상처를 이겨내고 다시 저렇게 살아내기까지 저 사람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울어야 온전히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을까.


겨울의 초입. 풍경의 색과 배경이 변하고, 상처가 있는 이들에겐 더 시린 냉혹한 계절이 오고 있다. 이미 인생에서 수많은 겨울을 겪어왔다. 익숙한 겨울이지만, 다시 온 이 겨울엔 조금 덜 춥고 덜 아프게, 살아내고 싶다. 그리하여 긴긴 겨울 끝에 맞이한 봄에 나는 비로소 행복의 미소를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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