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겨울에 만난 사람들
나에게 겨울은 몸도 마음도 추운 계절로 기억되어 왔다. 많은 이들에게 겨울은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이라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인생 중 단 몇 년을 제외하고, 나의 겨울은 냉기만 가득했다. 지난겨울도 나에게는 혹독한 추위를 안겨다 주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 시린 아픔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올해 겨울은 조금 괜찮아진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11월의 초입. 늦은 밤 솔향집 앞마당에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속이 개운해지고, 뜨겁게 서러웠던 것들이 날숨에 함께 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겨울 공기가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도 있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박선옥 씨가 밖으로 나왔다. 제법 두꺼운 점퍼를 걸친 채, 손에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잠이 안 와서. 창문으로 보니까 애기엄마도 밖에 있길래 차나 한 잔 같이 하려고 나왔어, 괜찮지?"
"네, 그럼요. 저도 잠이 안 와서 나와 있었어요. 하늘에 별이 참 많네요."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많아. 그렇지? 그래서 내가 여길 못 떠나. 공기도 좋고, 마음도 여유롭고. 시집와서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나는 여기가 좋네. 그래서 남편 먼저 보내고도 계속 살고 있어."
"사별을... 일찍 하셨나 봐요..."
우리는 마당에 놓은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아들 고등학생 때. 병을 너무 늦게 발견해서, 큰 병원에 입원하고 두 달 만에 보냈어. 참 사는 게 뭔지, 그렇게 갑작스럽게 갈지 누가 알았겠냐고."
"그런 아픔이 있으신지 몰랐어요. 항상 밝으시고, 아드님도 늘 밝으셔서요."
"시간이 약이지 뭐. 벌써 10년도 더 지났으니까. 불쑥 생각나고 일찍 간 게 안타까워서 눈물도 날 때가 있지. 그래도 내가 슬퍼하면, 우리 아들이 눈치가 또 빨라서 금방 알아차려. 그래서 속으로 삭이지. 속으로 울고. 이제는 어디 멀리 여행 갔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
"그래도 대단하세요. 아드님도 잘 키우셨고, 이렇게 솔향집도 잘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애 아빠는 그냥 직장 다녔거든. 나는 주부로만 살았고. 근데 그렇게 남편 보내고 나니 내가 뭘 할 수가 있었겠어. 아들은 키워야 하고. 그때 나한테 있는 거라고는 이 집 하나라. 손님은 많이 없어도 굶어 죽진 않겠지 싶어서 시작했어. 동네에 사는 남편 친구들이 돈도 안 받고 몇 날 며칠을 와서 민박집으로 쓸 수 있게 공사도 해주고, 허가도 받아주고 고생해 줬지.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어."
"많이 힘드셨겠어요..."
"아유, 힘든 거야 뭐. 그래도 자식이 있으니. 키워야 하잖아. 이 악물고 살았지. 눈물 나도 참고 살았어. 지난번에 애기엄마가 이혼하고 여기 내려온 거라고 했을 때 남 일 같지가 않더라고. 그때 온 손님 때문에 애기엄마가 얼마나 불편했을 거야. 건너 건너 아는 집 조카라서 받은 거거든."
"아니에요, 제가 여기에 있는 걸 그 사람이 어떻게 알았겠어요. 서로 생각지도 못한 거죠. 괜찮아요. 서울에 살든 어디가 됐든 아는 사람은 언제라도 마주칠 수 있는 거잖아요. 괜히 제가 아직 마음이 힘들어서 더 불편했나 봐요."
"힘들지. 어린 자식도 얼마나 보고 싶을 거야. 그거 참고 이 멀리까지 와서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들어. 얼마나 고생스러워."
박선옥 씨의 위로와 같은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눈치도 없이 계속 나왔다.
"아... 죄송해요...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지..."
"뭐가 죄송해. 울어. 울 때 실컷 울어야 해. 나처럼 참으면 병들어. 누가 뭐라는 사람 없는데 울면 좀 어때."
"감사해요..."
"동네가 코딱지만 해서 사람들이 아주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갠지까지 다 알아 이놈의 촌구석은. 동네 여편네들 수근덕 거리는 거 신경 쓰지 마. 누가 이상한 말 하거든 나한테 얘기해. 내가 아주 그냥 머리털을 다 뽑아다 줄 테니까."
박선옥 씨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는데, 동시에 웃음까지 터져버렸다.
"아니 뭐 그렇게 남 일에 관심들이 많아. 지들이나 잘 살면 되지. 그때 시장 갈 때 차 안에서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애기엄마랑 둘이 있을 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참았지."
"그러셨구나. 말씀만이라도 너무 감사해요. 안 그래도 그런 게 좀 신경이 쓰였거든요. 근데 뭐 저도 그렇고 카페 사장님도 그렇고 서로 아니니까요."
"아니고 말고를 떠나 서말이야. 나는 애기엄마 보면 마음이 짠 해. 나도 자식을 키워봐서 알지. 근데 또 기특해.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이 지는 게 내 눈에 보이더라고. 처음에는 밥도 잘 못 먹고, 거르더니 지금은 잘 먹는 게 그렇게 이뻐. 이혼한 가족들 말고, 친정 가족은 없는 거야?"
"그게... 있긴 한데요... 지금은 남보다 못해요."
"에휴. 더 얘기 안 해도 알 것 같아. 여자들이 힘들 때 기대는 게 친정인데 남보다 못하다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여기 지내면서 나를 엄마까지는 아니어도 이모다 라고 생각하고 지내. 한 집 살고 한동네 살면 이모지 뭐."
"진짜... 너무 감사해요. 아주머니 덕분에도 제가 더 빨리 회복하는 것 같아요."
"내가 뭐 하는 게 있다고. 그냥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는 애기엄마 잘 먹이는 거지. 그러니까 아들 생각해서라도 떠 씩씩하게 살아야 돼. 건강부터 잘 챙기고, 일도 하면서 몸이랑 마음이 다 건강해야 돼. 안 키웠다고 죄책감 갖지 마. 안 키웠어도 엄마가 멋지게 잘 살아서 아들한테 힘이 되어주면 그게 더 최고야."
"듣고 보니 맞는 말씀이네요. 그럴게요."
"그래. 내가 이 얘기를 전부터 해주고 싶었어. 나도 앞으로는 애기엄마를 - 내 친 조카처럼 생각할 거야. 어려워하지 말고. 꼭 여기서 아픈 거 다 잊어버리고 회복해."
"그럴게요. 꼭 그럴 거예요."
"그래. 그리고 그, 카페 박사장."
"아, 태석 씨요?"
"어. 도통 본인 얘기를 잘 안 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들리는 말로는 그쪽도 상처가 크다고 하더라고. 나도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 얼굴만 보면 알아. 그 사람 처음 여기 온 게 내가 민박집 차리고 얼마 안 되서였지. 근데 그때는 그냥 며칠 있다가 다시 가고 그랬거든. 중간에 1~2년 안 온 적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와서 지낸 건 2년도 안 됐어. 처음 왔을 땐 방에만 틀어박혀 있더니. 카페 인수해서 저렇게 사는 게. 나는 그 사람 봐도 기특해. 나는 두 사람이 우리 집 와서 회복해 가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있잖아. 참 고맙더라고. 다시 살려고 일어나는 게. 그게 쉬운 게 아닌데 젊은 사람들이 참 기특해."
"아. 여기 처음 온 건 오래전이네요."
"응. 그때는 아주 그냥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이라 잘못되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했었어. 근데 지금은 잘 웃기도 하고. 사람이 무뚝뚝하긴 해도 잔정이 있어. 동네사람들 헛소리 난 신경 쓰지도 않지만 혹여라도 둘이 좋은 사이라고 해도 나는 두 팔 벌려 환영이야. 상처도 아파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거야. 뭐, 이런 얘기는 둘째 치고, 앞으로 잘 회복해. 나는 애기엄마 우리 집에서 계속 안 지낼 것도 알아. 아무래도 내 살림하던 사람이면 혼자가 편하거든. 나가면, 멀리 가지 말고, 여기 이모집 근처에 집 얻어. 그래야 내가 반찬도 해다 주고 하지. 이모 뒀다가 어디다 써."
"제가 진짜...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드릴 말이 없네요. 너무 감사해요."
"어유, 그런 말도 말어. 원래 그런 거야 이모랑 조카는."
"제가 여기 와서 진짜 가족이 생겼네요. 저는 이제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의 별이 유난히도 더 밝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내 안에도 그런 반짝이는 별들이 서서히 빛을 내며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꼈다. 이곳에 오길 잘했지 싶다. 이름처럼 정말 좋은 일이 다 오는 '다온골'. 밤은 깊어가고, 내 마음도 익어갔다.
아침 식사로 고추장찌개가 식탁에 올려졌다. 박선옥 씨의 아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엄마, 김치찌개랑 된장찌개에서 드디어 업그레이드야?"
"시끄러워 이놈아. 너 말고 여기 내 조카 먹으라고 한 거야."
"엄마 조카?"
"어. 여기 애기엄마 어제부로 내 조카 하기로 했어. 그니까 너도 누님으로 깍듯이 모셔. 까불었다가는 국물도 없어 이놈아."
박선옥 씨의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지켜보던 태석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카페 사장님, 잘 들어요. 여기 애기엄마랑 나랑 이모 조카 하기로 합의를 봤어. 그러니까 카페에서 여편네들이 이상한 소리 하거든 나한테 꼭 얘기해야 돼. 내가 아주 그것들 가만 안 둘 거야. 어디 걸리기만 해 봐."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모두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여느 화목한 가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늘 꿈꾸던. 편안히 웃고 떠들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또 다른 모습의 가족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식사 후 노트북을 챙겨 들고 태석의 카페로 향했다. 정확히는 태석의 카페 출근길에 함께 동행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카페에서 일을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태석의 카페 오픈 준비를 함께 돕고 그 답례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전보다 많은 분량의 원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파일을 열어 집중해서 하나하나 수정해 나갔다.
오전 열 시 정도가 되자 손님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동네 아이 엄마들도 있었다. 오늘도 나와 태석을 번갈아 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겐 든든한 백도 생겼다. 그때 카페 문을 열고 박선옥 씨가 들어왔다. 좀처럼 카페에 오는 일이 없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카페에 들렀다.
그러더니 제법 큰 목소리로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태석에게 이야기했다.
"아니, 사장님. 저기 우리 조카. 글쎄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여편네들이 우리 조카랑 사장님이랑 막 소문을 내고 다니는 거야. 누가 내 조카를 막 건드려. 내가 화가 나서 나와봤어요."
"하하. 그런 소문이 돌았대요?"
"몰랐구나. 있어 그런 게. 그러니까 누가 우리 조카 얘기하면 나한테 꼭 얘기해 줘야 돼. 내가 잡히면 가만 안 둘 거야."
박선옥 씨는 이 얘기를 마치고 내 쪽으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늘도 카페 와서 일하는 거야? 이모 시장 갔다 올 거야. 여기 장터 열려도 없는 게 많아서 시장은 한 번씩 가야 돼.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이모가 만들어주게."
"혼자 가셔도 괜찮아요? 같이 가드릴까요?"
"아니, 너는 일 해야지. 아들놈 뒀다가 어디다 쓰겠어. 그놈도 식자재 사러 나가야 된대. 같이 가면 돼. 뭐 먹고 싶은 거 없으면 이모가 맘대로 사 와서 만든다."
"저는 다 좋아요. 이모가 만드신 건 다 맛있으니까요."
박선옥 씨는 나에게 찡긋 윙크를 날리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군거리던 애기 엄마들 눈이 제법 놀란 표정이었다. 앞으로는 걱정 없이 여기 살아도 정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석이 옆으로 와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진짜 든든한 백을 뒀네요. 앞으로 동네사람들 헛소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러게요. 저 진짜 좋은 분을 이모로 두게 되었네요."
하루가 내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마음의 걱정 없이. 걸리는 건 아들 딱 하나뿐. 다른 걱정은 없었다. 오늘 일을 다 마치고 내일 일찍 서울로 갈 채비를 해야 한다. 드디어 집을 정리하는 날이기도 하고, 아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윤호에게 줄 선물들은 진작에 다 포장해 두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도 실컷 먹고, 예쁜 옷도 사주고, 같이 사진도 찍겠다는 알찬 계획도 미리 다 짜두었다.
오늘따라 저녁 식탁이 푸짐했다. 무려 아귀찜이다.
"이걸 직접 하신 거예요?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비주얼인데요?"
"내가 원래 요리를 좀 해. 근데 이 두 남자들만 해주다 보니 반응도 맨날 별로고 해서 안 했었지. 근데 내가 어제 조카가 생겼잖아. 우리 조카가 요새 잘 먹어서. 음식 하는 맛이 나."
"와, 저 아귀찜 진짜 좋아하거든요. 잘 먹겠습니다!"
"다행이네, 좋아한다니. 밥도 많이 했어. 많이 먹어."
각자가 오늘 하루를 풀어내는 이야기로 가득한 평범한 저녁 식탁이었지만, 행복은 이전보다 배로 늘어나 있었다. 식사 후에는 박선옥 씨를 도와 함께 설거지를 했다. 남자들은 식탁 정리와 쓰레기 정리를 맡아서 했다. 우리는 식후 과일까지 함께 먹은 후에야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일찍 일어날 준비를 마친 후 침대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방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태석이었다. 그는 나에게 예쁘게 포장한 쿠키 상자를 내밀었다.
"내일 서울가시죠? 집 정리 잘하고 와요. 아쉬움 없게. 그리고 이건 아들 주세요. 좋아할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카페에 오는 동네 꼬마들한테 인기 있는 초코바랑 쿠키예요. 아까 퇴근하기 전에 만들어봤어요."
"일부러 저 주시려고 만드신 거예요?"
"정확히는 선영 씨가 아니라 선영 씨 아들이요."
"저는 늘 이렇게 받기만 하네요. 감사해요. 아들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일찍 일어나셔야 하니 얼른 주무세요. 내일 잘 다녀오시고요. 운전도 항상 조심하시고요.
"네, 그럼 다녀와서 뵐게요."
마음이 가득히 채워지는 하루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배품과 사랑을 받은 하루. 나도 이렇게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다시 차근히 배워가고 있다. 천하에 고아와 같던 나에게 가족을 자처하는 사람도 생겼고,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것보다 어쩌면 더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참 편안하고 따뜻한 11월의 어느 겨울밤. 나는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