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폭우 속에서 드러난 진심
아침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산을 삼키듯 드리웠고, 바람은 날카롭게 골목을 휘돌았다.
마을회관 안은 작은 전운처럼 술렁였다. 이장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논두렁이 금방 터질 것 같습니다. 물이 더 불기 전에 막아야 해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손 좀 보태주세요!”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화를 신고 삽과 괭이를 챙기며 분주히 움직였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함께 하러 나간다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모두가 나가는 일에 혼자 남을 수는 없었다. 발끝이 떨려도, 손이 굳어도 따라나설 수밖에.
논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진창이었다. 발이 푹푹 빠졌고, 바람에 우비가 뒤집혔다.
금세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허공을 가르던 천둥이 산허리를 찢으며 울렸다.
“이쪽! 흙포대를 더 가져와요!”
사람들은 계곡에서 떠내려온 돌과 나뭇가지를 치우며 허겁지겁 논두렁을 쌓아 올렸다.
한 발짝 다가설 때마다 발밑에서 물이 솟구쳤다.
손을 뻗을 때마다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눈앞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졌다.
“으악!”
한 청년이 발을 헛디뎌 급류로 휩쓸리듯 미끄러졌다.본능적으로 손이 흙포대를 내던졌다.
나도 모르게 몸이 저절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러나 나보다 더 빠른 그림자가 청년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몸이 흙탕물 속으로 함께 구르며 쓰러졌다. 그 얼굴은 한태석이었다.
흙투성이가 된 손, 빗물에 젖은 머리칼, 숨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괜찮으세요?”
짧고 단단한 물음이었지만, 안도와 분노, 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청년은 곧 몇몇 사람들이 부축해 갔고, 남은 건 빗속에 주저앉은 태석과…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발끝뿐이었다.
“왜 그렇게 무리했어요?”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묻자, 그가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누군가는 붙잡아야 하니까요. 이 마을도… 당신도.”
순간, 번개가 산허리를 찢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말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흐릿하게 짐작하던 무언가가 비에 젖은 눈빛 속에서 또렷해졌다.
“이쪽도 막아요! 물이 넘칩니다!”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논둑이 무너져 내리려는 곳으로 사람들이 달려갔다.
삽질을 하며 함께 흙을 퍼 날랐다. 팔이 저려도, 손끝이 까져도 멈출 수 없었다.
이곳에서 무너지면 온 마을이 잠길 수 있다는 절박감이 비보다 더 세차게 몰아쳤다.
태석은 흙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선두에서 몸을 던졌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그의 등은 이상하게도 믿음직스러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삽을 내려놓았다.
“이제 그만해요. 더는 위험합니다.”
이장님의 외침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논두렁은 간신히 버텨냈다. 사람들의 옷과 얼굴만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을 뿐.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지만, 안도의 한숨이 빗속에서 섞여 나왔다.
모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내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빗속에 앉아 숨을 몰아쉬던 태석의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눈빛은 분명 말했다. 이곳에서의 삶은 단순한 머무름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시작이라고.
늦은 밤, 폭우는 마을을 고립시켰다. 전기가 끊기고, 골목마다 등불만 희미하게 흔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곳에 모여 대책을 논하고 있었다.
_카페, 달빛_.
문틈 사이로 따뜻한 불빛과 커피 향이 새어 나오는 곳. 그곳에서 한태석이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고 있었다. 벽에는 그의 손글씨로 적힌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_'모든 계절은 결국 돌아온다.'_
심장이 이유도 모른 채 또다시 요동쳤다. 낯선 곳, 낯선 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돌아올 곳을 찾은 사람처럼 숨이 편안해졌다.
폭우는 갈수록 거세져 갔지만, 그럴수록 카페 안은 말소리가 줄어들고, 때론 빗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이 이어졌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의 진심은 빗속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도 스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폭우보다 더 깊이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