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불청객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
거세게 몰아치던 비는 이제 그쳤지만, 산길 여기저기엔 질퍽한 흙냄새가 가득 배었다.
방 한편에 널어둔 빨래를 걷고 있는데, 휴대폰이 또 울려댄다. 전남편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윤호가 요즘 네 얘기만 한다.”
인신도 없이, 첫마디부터 본인 할 말만 하는 사람.
정말이지 이혼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구나.
“지난번 체육대회 때도, 애가 너 찾다가 넘어져서 울었잖아. 네가 올 줄 알았나 봐.”
전남편이 몇 주 전 보내준 영상 속, 운동장 모래바닥에 넘어져 울고 있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가기 바쁜데, 넘어진 윤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는 그 영상을 차마 끝까지 보기가 힘들어 몇 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보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다음 주에 유치원 발표회 있어. 엄마 안 오면 애만 더 상처받아.”
그는 내 가슴에 못을 박듯이 말했다.
“… 알았어. 생각해 볼게.”
“생각할 게 뭐 있어? 엄마면 오는 거지.”
뚝. 전화가 끊겼다. 늘 이런 식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는데, 눈물이
새어 나왔다.
한참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실로 나가니, 박선옥 씨가 막걸리병을 닦으며 말을 걸었다.
“어제 한사장님 카페에 서울 손님 왔다 갔다던데. 동네사람들 말로는 아는 사람 같다던데, 봤어요?”
귀가 쫑긋했다.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시선을 피했지만, 나 역시 궁금한 게 많은 사람 중 하나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여길 떠나지 못하고 카페에 매달려 있는 거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태석의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커피 향에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태석은 평소때와 마찬가지로 무뚝뚝한 인사를 건넸다.
“오셨어요.”
가장 안쪽 테이블에 앉아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컵을 닦던 태석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늘, 울었죠?”
“네?”
“눈이 좀 빨갛네.”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변명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요.”
태석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마시면 좀 나아져요.”
두 손으로 잔을 받아 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간신히 한 모금 삼켰다.
“… 고마워요.”
저녁 무렵, 카페 앞에 왠 낯선 남자가 나타나 알짱거렸다.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는, 태석을 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아직도 여기 있네? 그렇게 일 잘하던 사람이, 카페나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지.”
일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태석의 얼굴이 굳었고, 나는 멈칫한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남자는 씩 웃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아는 사람이에요?” 조심스레 물었다.
“별거 아니에요.” 태석은 짧게 잘라내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한동안 굳어 있었다.
늦은 밤, 방 안에서 휴대폰 사진첩을 들여다봤다. 아들의 사진만이 가득했다. 유치원에서 색종이를 붙이며 웃던 모습, 모래밭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 내 옆에 꼭 붙어 앉아 활짝 웃는 모습까지...
보고 있자니 손끝이 떨려왔다.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왜 그때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
한없이 무너져 내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문득 창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태석이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
불빛에 드러난 그의 옆얼굴은 왠지 낯설고도
쓸쓸해 보였다.
어쩌면 나만큼이나 슬퍼 보였다.
눈물이 번진 시야 너머로, 서로의 그림자가 같은 창틀에 겹쳐져 보였다.
도피라고 생각했던 이곳에서, 나는 점점 도망칠 수 없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