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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

당신이 특별했던 이유(2)

by 우주숲

모임에서도 그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지만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무뚝뚝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맞은편에 내가 자리를 잡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수저를 챙기느라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 처음 나온 나에게 말을 걸며, 어색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살뜰히 챙겨주었다.


회사에서는 차가운 이미지가 강했던 터라 그런 그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의외의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의 벽을 허물며 그와 술잔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 되었고 같은 동네에 사니 데려다주겠다는 그의 제안에 함께 걸으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제가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에이~ 다 도와주신 대로 하는 건데요 뭘."

"마감일 전에 한 번 더 공지도 해주시고, 양식까지 전부 새로 다 만드신 것 같던데요? 일 배우려고 여기저기 용기 내서 질문하러 다니는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그런 친구들 잘 없는데... 앞으로 더 잘 되실 일만 남은 것 같아요~ 기회 되면 다음엔 회사에서 진행하는 A프로그램이 있는데 꼭 신청해 보세요. 커리어 쌓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분명 잘하실 것 같아요."


자기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간 회사에서 내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는지 그는 집에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칭찬을 쏟아냈다. 나를 낳아준 엄마도, 스무 해 넘게 함께 살아온 아빠도 이렇게까지 나를 칭찬해 준 적이 없었는데... 고작 나를 반년밖에 보지 않았음에도 그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노력을 하는 사람인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에 대한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며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이랑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길을 바랐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늘 열심히는 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택해왔다. 그 결과는 늘 후회와 원망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취를 시작하고, 일을 시작해도 못 이룬 꿈에 대한 결핍은 늘 마음 한켠을 채우지 못했다.그런데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용기도, 다시 일어설 힘도 생길 것 같았다. 그러면 내 삶도 자연스레 더 풍족해질 테니...

내 곁에는 그런 사람이 평생을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차이 때문인지, 그는 나를 이성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렵 여러 차례 소개를 받게 되면서 그에 대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려 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나가면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소개팅 중에도 '지금 그는 뭘 하고 있을까'가 궁금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 휴일마다 산책을 나가며 혹시 마주칠까 기대하곤 했다. 모임에 그가 불참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그 사이에 여자친구가 생긴 건 아닌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런 내 마음을 마주하고 나니 이제는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진짜 딱 한 번만 용기 내보고 아닌 것 같으면 바로 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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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인생에 딱 한번 용기 내서 도전했던 그 순간 덕분에, 지금의 남편을 그리고 예쁜 아이를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내 세상의 전부가 된 그들 덕분에,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글로 꺼내며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

수많은 사람 중에 당신이었어야 했던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특별하게 봐준 당신이
내게는 가장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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