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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고 보니 더 이해 못 할 마음

상처 끝에 피어난 단단한 사랑

by 우주숲

5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열 달의 기다림이 끝이 났다.


처음 겪는 고통에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고, 정신을 붙들려 머리를 쥐어 뜯으며 버텼다. 그렇게 온몸이 부서질 듯한 순간 끝에, 마침내 나의 작은 우주를 마주했다. 분명 1초 전까지만 해도 수술시켜 달라고 애원할 만큼 아팠는데, 아이를 보는 순간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힘차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자 안도와 함께 말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


밤새 잠을 설쳐도, 밥 한 끼 편히 먹지 못해도, 아이의 배냇짓 하나면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웃는 얼굴만 봐도 신기했는데, 어느새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엄마를 부르고, 무언가를 잡고 걸으려는 아이를 보니 매일이 새롭고 경이로웠다.


'아가, 너의 행복을 영원히 지켜줄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매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외로웠을까.

엄마, 아빠는 왜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안심시켜주는 손길 하나 건네지 않았을까.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그때의 엄마, 아빠에게는 없었던 걸까.


지금까지 나는 늘 이해하려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힘든 세상 속에서 나를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겠지. 마음은 있었지만 표현이 서툴렀겠지.'

스스로 그렇게 다독이며 살았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품고 낳고 길러보니,

그런 변명들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닿지 않아서였다.

부족한 게 아니라, 주려 하지 않았던 거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사랑 받지 못했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다시 한번 슬픔에 빠지려던 그 때, 작고 하얀 토끼 같은 아이가 내게 와서 상처난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내가 건넨 사랑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아이는 나의 상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내 품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는

꼭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물려 받은 사랑은 없었지만, 나는 아이를 통해 사랑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나를 옭아매던 유년 시절의 상처를 뿌리채 뽑아내 버리고 이제는 아이가 건넨 이 소중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려 한다.



낳고 보니 더 이해 못할 마음.
어쩌면 부정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흘려보내고,
유년시절의 상처를 애써 포장하며 괜찮은 척하던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이다.

'엄마, 아빠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그렇지만 내가 포장한다고 해서, 그 시간이 아름답게 미화될 순 없겠지.'
'그래도 그 일들이 내 현재의 행복을 앗아갈 순 없어.'

이제는 나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시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으려는,
애써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저 나의 길을 걸어가려는 다짐이자 의지다.

그들이 나를 사랑했는지, 사랑하지 않았는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제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내 곁에 있고,
그 존재가 나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니.
이제는 그 사랑을 지키고, 행복을 채워나가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이제는 나만의 삶을, 나만의 가정을 온전하게 꾸려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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