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 엄마, 아빠
엄마,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자,
가장 좋아하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아홉 살이 되던 여름,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참 많이 오던 날이었죠.
그림을 그리다 소파에서 잠든 엄마를 보니 저도 잠깐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단잠에 빠진 엄마가 깰까 봐 조금 떨어져 누웠는데,
엄마가 몸을 돌리시더니 저를 꼭 안아주셨죠.
바깥엔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엄마 향기로 가득한 그 품속의 시간은 아직도 참 포근하게 남아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여전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해요.
비가 오는 풍경도 좋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안겨봤는지 모를
그리운 엄마의 품이 자연스레 떠오르거든요.
아빠는 3교대로 늘 바쁘셔서 함께한 기억이 많진 않아요.
그래도 어렸을적 찍은 사진을 보면 알 것 같아요.
저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사진 속 아빠는 늘 저를 안고 계셨고
눈빛마다 애정이 가득했어요.
그리고 기억나세요?
제가 처음으로 아빠께 요리를 해드렸던 날.
중학생 때 가정시간 숙제로 만든 김치볶음밥이었는데
아빠는 대단한 진수성찬이라도 본 듯 놀라며 웃으셨죠.
"우리 딸이 요리도 할 줄 알아? 대단하네. 언제 이런 걸 배웠어?"
그 말에 저는 너무 행복했고, 그때 처음 알았어요.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게 이렇게 뿌듯한 일이구나 하고요.
그때의 기억때문인지 지금은 남편, 아이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울 정도로 요리에 재미도 많이 붙였어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제 유년시절은
상처와 원망으로 가득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며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사랑받았던 기억들도 참 많았더라고요.
그리고 그 기억들이 조용히, 오랫동안
제 안의 행복을 지탱해주고 있었어요.
비 오는 날이 유독 좋은 것도,
요리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새벽 공기에 설레는 것도,
시장을 구경하며 웃음이 나는 것도...
다 엄마, 아빠와 함께한 시간들이 제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함께였다면
또 어떤 행복한 기억들이 남았을까 아쉽지만,
이제는 저만의 가정을 꾸렸으니
그 아쉬움을 새로운 추억으로 채워가려 해요.
나의 첫사랑 엄마, 아빠.
마음은 늘 사랑을 향하고 있었는데,
남겨진 아픔 때문에 그 마음을
조금은 모질게 표현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원망도, 의문도 모두 흘려보내려 해요.
그러니 엄마, 아빠도 저에게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을
저와 똑 닮은 손녀딸에게 주며,
혹시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아쉬움과 미안함까지 다 흘려보내버리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시간이 덮어주지 못했던 상처들도
이제는 다정함 속에서 천천히 아물었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용기가 없어 이 편지를 건네진 못하지만,
언젠가 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25년 10월 24일 금요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둘째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