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됐지만 사람은 통일 중이다
분단, 식민지배, 전쟁,
두 도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의 역사적 뿌리가 다르다
그래서 호치민 사람과 하노이 사람이 한자리에 있을 때, 공기가 바뀌는 순간이 있다.
농담처럼 던지지만 농담이 아닌 말.
칭찬처럼 들리지만 칭찬이 아닌 표현.
그 자리에 처음 끼어든 이민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무엇이 이상한지 짚지 못한다.
15년 이상을 살면서 그 장면을 수백 번 봤다.
처음에는 지역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감정이 아니라 역사였다.
베트남이 하나의 나라였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17세기, 베트남은 북부의 Trịnh 가문과 남부의 Nguyễn 가문으로 나뉘어 150년 가까이 분리 통치됐다. 지도상 같은 땅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개의 나라였다.
프랑스가 들어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북부(통킹), 중부(안남), 남부(코친차이나)로 나눠 각각 다른 방식으로 통치했다.
하나로 묶인 적은 있었지만, 같은 방식으로 다뤄진 적은 없었다.
지금 두 도시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는 이 시간이 녹아 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행정 수도는 하노이였다.
총독부가 들어서고 관료 조직이 자리를 잡았다.
격식과 위계가 도시의 문법이 됐다.
누구를 아는지, 어느 기관 출신인지가 관계의 시작점이 된 건 이때부터다.
하노이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상대의 배경을 먼저 읽으려는 건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도시가 오래 써온 방식이다.
사이공은 달랐다.
프랑스가 사이공에 원한 건 행정이 아니라 무역이었다.
메콩 델타의 쌀이 사이공 항구를 통해 나갔고, 중국·인도·프랑스 상인이 들어왔다.
출신보다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도시가 됐다.
식민지배가 끝났어도 그 문법은 남았다.
호치민 사람이 첫 만남에서 사업 얘기를 꺼내는 건 무례가 아니라 그 도시의 오래된 언어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두 도시는 전쟁으로 나뉘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하노이와 사이공. 20년 동안 총을 겨눈 사이였다.
1975년 4월 30일, 북이 남을 통일했다.
사이공은 호치민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긴 쪽과 진 쪽이 같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름이 바뀐다고 기억이 바뀌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 기억을 자식에게 넘겼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밥상머리에서, 골목 어귀에서, 상대를 소개하는 방식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두 도시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50년이 채 안 된 그 시간이 담겨 있다.
이민자는 이 역사를 모른 채 두 도시 사이를 오간다.
하노이에서 받은 차가운 첫 인상을 상대의 성격으로 읽고, 호치민의 과한 친밀감을 가벼움으로 읽는다.
그러나 그 온도 차이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쌓여 있다.
역사를 알고 나면 미팅 자리의 공기가 다르게 읽힌다.
격식을 요구하는 하노이 사람도, 첫날부터 속도를 내는 호치민 사람도
둘 다 자기 역사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지도가 아니라 시간을 봐야 한다.
지도는 1975년에 하나가 됐다.
사람은 아직 그 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