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유독 잠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머리만 대도 잠이 오는 사람들.
어디서든 두 다리 뻗고 누우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드는 사람들.
돈이 많은 사람보다 명예가 있는 사람보다 그녀는 잠이 많은 사람이 부러웠다.
새까만 정적 속에서 눈을 감을 용기가 있다는 게.
그녀는 매일 밤 마주하는 어둠이 무서웠다.
그 속에서 눈을 감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일은 세상에 더 없었다.
깊은 밤이 지나도록 잠에 들지 못하고 유령처럼 거실을 떠돌다 창밖을 보면, 결국 그녀의 눈은 늘 그 밤에 가 닿았다.
스물일곱. 대학원을 마치고 떠난 여행의 첫 목적지는 부다페스트였다.
공항에서 엄마와 통화할 때 여자가 엄마에게 부다페스트, 하면 뭐가 떠오르냐 물었다.
엄마는 "황홀한 동경"이라 답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엄마처럼 동경할 만큼 부다페스트를 알지 못했다.
통화를 마치고 한참을 입 속에서 부다페스트라는 말을 사탕처럼 굴려보았다.
아직은 달콤하기만 한 무지개 사탕 같은 맛이 혀 끝을 맴돌았다.
낮의 태양을 뚫고 11시간의 비행을 마친 뒤, 다시 또 한 시간을 날아서 겨우 밤의 이불이 덮인 도시에 도착했다.
밤의 부다페스트 공항은 썰렁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 막막하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숙소까지 가야만 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계획에 없던 미니 셔틀의 티켓을 사고 말았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올라타니 이미 한 무리의 청년들이 앉아 한껏 떠들어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언어, 낯선 사람들, 익숙지 않은 세상...
그녀는 그 순간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토록 그립던, 몹시도 외롭지만 그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시내로 접어들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펍과 레스토랑들이 제 불빛을 반짝이고, 그 불빛 아래 나비처럼 사람들이 제 날개를 훨훨 펼치며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청년들은 그 거리 한가운데서 내렸다. 곧 저들도 날개를 펼치고 밤공기 속으로 사라질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날개를 펼치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눈을 감기엔 이국의 밤 풍경은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잠시만 걷기로 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미지의 아름다운 이 도시의 밤과 그 밤을 밝히는 부드러운 가로등 불빛 사이를 조금만 헤매 보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머리를 굴리는 것은 내일 아침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그 밤, 그녀는 그를 보았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밤.
달콤한 공기와 찰나의 순간들.
그곳에 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