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의 이마
엄마는
삼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로 하루가 벅차서
나를 예쁘게 꾸미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질끈 묶은 올백머리에 드러난
넓은 이마 덕분에 짓궂은 아이들은
나를 '황비홍'이라 불렀다.
그 별명은 오래도록 따라다녔고,
자연스럽게 이마는 나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다행히 공부는 잘했고,
반장이나 부반장을 맡을 만큼
아이들과 선생님의 신뢰도 받았다.
괴롭힘을 당해본 적은 없지만,
별명이 만든 마음속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울컥해서 말했다.
"엄마 내 이마 넓어서 싫어!
애들이 황비홍이래."
엄마는 늘 같은 대답을 하셨다.
"넓은 이마에 복이 들어오는 거야.
그런 말 신경 쓰지 마."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땐
단순한 '위로'보다는
엄마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자 나는 앞머리를 내렸다.
바람이 불어도 흐트러지지 않게
완전히 덮은 방패.
이마를 가리고 나니
사춘기 마음은 한 결 가벼워졌고,
고등학교를 지나는 동안
넓은 이마 콤플렉스도 없어진 듯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직장인이 된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를 가꾸고 싶은 마음.
그건 어른이 된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더는 앞머리를 자르지 않는 지금.
내 이마를 꼭 닮은 아이가 곁에 있다.
아침마다 아이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엄마, 내 머리 이쁘다."
"엄마, 오늘은 한 갈래로 땋아줘."
"엄마, 하트머리 할 수 있어?"
아침마다 찾아오는
나의 작은 헤어 고객님,
그 요구사항이 참 사랑스럽다.
'무엇이든 속상한 마음이 생기거든
엄마가 잘 들을게.
그리고 같이 이야기하자.'
그리고 나는
'복이 든다'던 그 말이
마음 돌볼 겨를 없이 하루하루 바쁜
엄마가 건넬 수 있었던
'최선의 위로'는 아닐까 이해해 본다.